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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2

기도하는 사람들-김훈, 『흑산』(학고재, 2011) 1. 앞질러 엎드려 절하는 겁박하며 숨통을 죄는 폭력 앞에서 오늘의 사람들은 말을 잃는다. 무릎 꿇리고 굴복당해 말을 빼앗긴 이들은 차마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그 곁에 앞질러 낮은 자리로 내려가 엎드려 고하는 이들이 있다. 꺼질 것을 알지만 매일 매일 말없이 촛불을 켜는 이,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이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쉬 말하지 않으며 모르는 것을 쉽게 묻지도 않는다. 기도란 절대자 앞에 엎드려 세속의 욕망을 희구하는 제의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촛불 하나를 키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일이다. 각자의 기도로 지켜낸 작은 염원이 암흑의 침묵을 지나갈 수 있게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된다. 나약하고 연약한 순간 없이는 가닿을 수 없는 장소도 있다. 낮아지는 일, 비상하는 자아의 욕망을 나직이.. 2015. 12. 23.
기도하는 삶 2015. 7. 11 지난 달 19회를 마친 다음 날 J 형의 초대로 제천에서 하루 묵었다. 반년 넘게 발품팔아 익힌 길들을 아낌없이 나눠주려는 J 형의 애씀과 지극한 환대 속에서 샘솟은 환담을 다 기록해두고 싶지만 묵히고 묵혀 꼭 품어 안고서 남은 한 해의 절반을 날 수 있는 양식으로 삼고 싶은 의욕 또한 감추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제천에서의 이튿날 형과 함께 천천히 되밟으며 걸었던 배론 성지에서의 감흥만큼은 차마 묵혀 둘 수 없을만큼 내 안에서 내내 진동하고 있다. 배론 성지를 바깥에서부터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동안 갖은 박해(迫害) 속에서 끝내 순교(殉敎)할 수밖에 없었던 척박한 사정과 남김없이 피를 쏟음으로써 척박한 그 땅에 새 세상으로 향하는 도랑 하나를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염원이 선득.. 2015.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