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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얼굴'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자신의 출생지가 ‘다리 밑’이나 ‘육교 아래’라는 ‘사실’을 알고 격심한 혼란을 겪던 세대가 있었다. ‘아이’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설명’할 수 없던 시절, ‘다리 밑’과 ‘육교 아래’는 성교육을 대신할 수 있는 탁월한 구조물이기도 했고 동시에 아이를 길들이는 ‘훈육의 공간’이기도 했다. ‘다리[육교] 밑’에서 아이를 주어왔다는 시쳇말은 인류의 저 오래된 ‘출생 서사’를 변주한 것이겠지만 한편으론 도시의 급속한 인구 팽창 현상으로부터 파생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리[육교]’는 도시의 관문이기도 하고 도시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그러니 밖에서 오는 ‘아이’와 ‘유이민’들은 모두 ‘다리[육교] 밑’에서 온 것이지 않을까. 근래 들어 육교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2012. 3. 8.
하나의 장르, 바로 그 한 사람 대중문화와 예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별미’를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막상 ‘별종’을 만나게 되면 태도가 돌변하곤 한다. 그 돌변의 자리가 가리키는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는 ‘별미’란 내 입맛(욕망)을 자극하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별종’이란 이해하거나 파악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장악할 수 없기에 매번 존재 그 자체로 내게 육박해 들어오는 어떤 위협으로 감지된다. 하여, ‘별종’들은 ‘보습 대일 땅이 없고’ 스스로를 증명할 상징질서도 희박하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별종’들은 ‘별미’라는 장애물, 더 정확하게 말해 ‘작은 차이들의 나르시시즘’을 원리로 하는 자본제적 (가치) 체계가 구축해 놓은 강력한 질서로 인해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마저도 박탈당.. 2011.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