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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얼굴'

by '작은숲' 2012. 3. 8.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자신의 출생지가 ‘다리 밑’이나 ‘육교 아래’라는 ‘사실’을 알고 격심한 혼란을 겪던 세대가 있었다. ‘아이’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설명’할 수 없던 시절, ‘다리 밑’과 ‘육교 아래’는 성교육을 대신할 수 있는 탁월한 구조물이기도 했고 동시에 아이를 길들이는 ‘훈육의 공간’이기도 했다. ‘다리[육교] 밑’에서 아이를 주어왔다는 시쳇말은 인류의 저 오래된 ‘출생 서사’를 변주한 것이겠지만 한편으론 도시의 급속한 인구 팽창 현상으로부터 파생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리[육교]’는 도시의 관문이기도 하고 도시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그러니 밖에서 오는 ‘아이’와 ‘유이민’들은 모두 ‘다리[육교] 밑’에서 온 것이지 않을까.
 


근래 들어 육교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도시 교통 정책이 ‘자동차’보다 ‘사람’을 우선시 하는 태도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길만한 일이지만 불현듯 ‘어떤 출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컨대 부산의 여러 대학가 앞에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보행자를 우선 시 하는 ‘X자 형 횡단보도’의 목적은 ‘보행자’를 위한 것인지 ‘소비자’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오늘날의 대학가가 거대한 쇼핑몰로 바뀐지 오래되었기에 ‘X자 형 횡단보도’를 단순히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도시 교통 정책의 성과라고만 보기 힘들 듯하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빨리 무언가를 사고-먹고-즐기기 위해서 육교는 철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 빨리 사고-먹고-즐기기 위해 육교가 철거되고 그 아래에서, 혹은 그 위에서 삶을 영위하던 이들도 어디론가 ‘철거[추방]’되어야만 한다. 


보행자(달리 말해 걸을 수 있고 갈 곳이 있는 이)가 편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육교[다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에 관해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한편으론 걸을 수 없고, 갈 곳이 없는 이가 모두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간다는 것은 ‘육교[다리]’를 건너는 것을 의미했다. 육교를 건너면서 우리 모두는 한번쯤 육교 위에서 떨어지는 ‘같은 꿈’을 꾸기도 했다. 육교를 오른다는 것은[‘너머’로 건너간다는 것은] 우리가 ‘같은 꿈’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육교가 위험과 공포의 공간으로 출현하는 것은 그 위에 걷지 못하고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육교를 건너기 위해서는 ‘그들’을 지나쳐[만나]야만 했다. 육교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도 사라졌다. 이제 아이들은 육교에서 떨어지는 꿈을 ‘함께’ 꾸지 않는다. 


‘거지’가 없다. ‘거지’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쓰는 나를 비난하겠지만 이제 ‘거지’라는 호칭은 써서는 안 되는 말이 아니라 ‘쓸 수 없는 말’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거지’라는 말을 쓸 수 없게 되었기에 그 말의 쓸모 또한 없어져버렸다. 길에서, 육교 위에서 우리에게 동정과 자비를 호소하던 이들은 이제, 그들의 ‘빈손’ 대신에 ‘볼펜’을, ‘대일밴드’를, ‘편지봉투’를 들거나, 장애인 협회 ‘모금함’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거지가 없어졌다는 것은 ‘불평등 구조’의 해소를 의미하기보다 외려 불평등의 구조를 은폐하는 방식의 다양함을 가리킬 뿐이다. 이제 어디에서도 ‘거지’를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우리는 ‘거지’라는 말 대신 ‘노숙자’나 ‘낙오자’라는 말을 쓴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우리에게 심문하며, 우리들로 하여금 몸둘바를 모르게 만들었던 그 불편한 이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이제 ‘상품’을 들고 ‘교환’을 요구한다. 물론 그 요구 또한 동정이나 자비에의 호소를 촉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상품 교환'의 형식으로만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도시 속에서 맺는 관계에 더 이상의 '증여'가 불가능함을 가리키는 '시대의 증표'처럼 보인다. 때때로 아이를 업고 지하철 바닥에 절을 하는 모자(母子)를 만나기도 하고, 사연을 적은 복사지를 나누어주는 몸이 불편한 이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때 ‘우리’가 ‘그들’에게 건네는 것은 ‘화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 ‘동정’이야말로 자본제적 시스템이 구축한 ‘공통 감정’의 일종일 테지만 무엇보다 관계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증여’라는 주고받음이 상품의 교환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사실. 


‘보행자[소비자]’를 우선 시 하는 ‘X자 형 횡단보도’를 건너며 어느 늦은 밤, 하단으로 향하는 지하철 바닥에 간난 아이를 업은 채 엎드려 절을 하는 아직 애띤 여자[어미]에게 이천원을 건네던 나를 떠올렸다. 내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하던 펑퍼짐한 그 뒷모습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서둘러 지폐를 건네던 그 순간이 떠올랐던 것이다. ‘X자 형 횡단보도’를 통해 간편히 ‘저쪽’으로 건너는 그 길 위에서, 아무리 애써봐도 도무지 ‘그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백년어>> 10호에 기고
 


1.  얼마 전에 쓴 짧은 단상을 조금 더 밀고 나가 짧은 글 한편을 완성했다. 인문카페 <백년어> 소식지에 실리는 것인데 재능 기부의 개념으로 쓰는 원고이고, 원고 주제가 자유며, 원고 독촉도 없기에, '이상적'인 지면이지만 불행히도 밍숭맹숭한 지면이기도 하다. 편집자가 내 원고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감의 긴장감이, 지면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원고지 15매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그 정도 분량의 글을 매일, 혹은 매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기에 내게 꽤나 중요한 지면이기도 하다. 그간 4편 정도 기고한 원고 중, 본격적으로 논의를 확해보고 싶은 글도 적지 않다. 그러나 편집자가 너무 무관심하다. <b-art>의 인터뷰 기획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것 또한 이와 비슷한 경우인데, '청탁 원고'는 편집자와의 지속적인 대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혹자는 '청탁'에 의존하는 글쓰기란 '제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라 폄훼했지만 그 의견에 십분 동감하면서도 '원고 청탁'이라는 그 예측 불가능한 '요청'은 나로 하여금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원고 청탁이란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청탁'에 의존하는 글쓰기의 한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그 '호명'에, 그 '요청'에 '결정적으로 응답'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2. 내게 '김반 일리히'[이반 일리히의 패러디다]라는 이름을 준(그/녀는 일전에도 내게 '김꽁'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mora' 덕에 휘발되어버리는 일상적인 생각에 미약하나마 깊이와 무게를 더할 수 있게 되었다. 'mora'는 농담조로 '김반 일리히'를 주제로 한 단행본 출간 계약을 맺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 말의 힘으로 몇 문장을 더 쓰게 된다. 이 짧은 글 또한 그 말의 힘에 상당부분 빚지고 있다.  


3. 야간 수업을 마친 후 밖으로 나오니 말할 수 없는 허함이 불시에 엄습했다. 편한 지인과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지만 '편한 지인'이 어디 그리 흔한 것인가, 라는 체념을 하고 퇴근했다. 인근 슈퍼에서 기네스 '한병'과 '프링글스'를 집어 들었다가 '카스'와 '하비스트'(1984년에 출시된 참깨류 비스킷)로 바꿔들었다. 그 결정에 마음이 조금 흡족해졌다. 그냥 몇 마디가 더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