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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노인의 몸짓으로, 노인이 되어버린다 해도

by 종업원 2014. 10. 3.

 

2014. 10. 3

 

 

남천동 시절, 볕이 잘 들지 않는 내 방 주변으로 두 채의 빌라가 들어섰다. 근 4개월 동안 매일 아침 6시부터 나는 하나의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집을 부수는 것보다 집을 짓는 소음이 더 크다는 것을. 무언가를 없애버리는 것보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더 요란하다는 것을. 매일 아침 침대에 앉아 어쩌면 당연한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 버린 것을 책망이라도 하듯 불성실한 잠을 요란하게 깨우던 기고만장한 소음 속에서 나는 몇 시간이고 그렇게 그 무엇도 하지 못하고 황망하게 있었다. 어느날 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의 허물어진 잔해더미 위로 조용히 꿈틀거리는 움직임에 섬칫, 발걸음을 멈추었던 적도 있다. 곳곳에서 움직이던 그림자들은 더렵혀진 장판과 각목을 느릿하게 옮기고 있었다. 검은 노인들의 그림자는 그렇게 추적추적 고요하게 움직였다. 질척이는 절도의 현장에서 나는 숨죽이고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하던 일을 중단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의 방식보다 중요한 것이 중단의 방식이다. 가장 쉽게 시작하는 방법, 다시 말해 가장 빨리 자신의 욕망을 취하는 방법은 서둘러 삶터를 부수거나 남김없이 불태우는 것이다. 집을 부수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한 것처럼 그런 중단의 방식은 한 순간에 일어난다. 그렇게 무너져내리고 불타버린 삶의 잔해들과 시간의 잔해들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무능의 시간을, 오욕의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이 요란하게 만들어내는, 오직 그들만이 듣지 못하는 소음을 폐허가 되어버린 그 자리에서 견뎌내야 한다. 잔해 더미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오직 욕망에 따라 쌓아올려지는 소음에 힘겨워할 때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은 한껏 들떠서 자신들이 어떤 소음을 내는지 알지 못한다. 남김없이 부수었으니, 흔적없이 불태웠으니, 오직 쌓아올리는 일만 남은 이들은 그렇게 굵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다. 죽임의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의 광채, 그 살인의 건축술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자리를 지키지도 못했다.   

 

27개월을 살았던 남천동 집을 떠나올 때 무척이나 슬펐던 이유는 이사가 너무 빨리 진행되어버린 데 있다. 2년 넘게 살았던 그 집은 두 시간만에 텅 비어버렸고 나는 한 순간에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무엇도 매만지지 못한 탓에 그렇게 텅 비어버린 집을 마주보지 못했다. 차마 엉엉 울지 못하고 잠깐 눈물을 훔친 후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 나왔다.  휴일인 오늘, 세 명의 늙은 인부들이 아랫집을 부수고 있다. 어제는 슬레이트 지붕을 들어내더니 오늘은 앙상하게 남은 지붕의 골격과 기둥 모두를 부술 작정인가 보다. 그저 오함마와 끝이 뭉툭한 곡갱이만을 들고 오래되고 복잡한 빈 집을 하나 하나 해체하고 있는 탓에 그들의 몸짓은 무언가를 부순다기보다 마치 '집의 살'을 발라내고 있는 듯 하다. 쿵쿵. (...) 쿵쿵. 한 사람이, 홀로, 오래된 집 기둥과 벽을 정확하게 내려치는 둔직한 소리가 내 방까지 울린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 감춰져 있던 각목들의 썩은 형체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낮고 좁은 방의 면적이 한낮의 가을볕 아래에 초라하기만 하다.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무너지는 기둥과 외벽. 하나 하나 만져가며 집을 해체하고 있는 그 소리, 정직하게 허물어져 쌓이는 둔중한 소리가 도망치듯 빠져나온 남천동 집으로부터 뒤늦게 도착한 비명인 것만 같다. 늙은 인부들이 느릿느릿, 그러나 성실히 집의 살을 발라내는 모습을 나는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그 소리를 듣고만 있다.  

 

반나절만에 허물어진 삶터엔 어김없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애씀과 정성의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흉물스러운 거대한 몸집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고만장한 위용을 자랑하며. 한 줌의 욕망을 쫓아 돌봄의 세계를 남김없이 불태우고 관계의 삶터를 무참히 부술정도이니 그들은 반드시 그곳에 새로운 집을 지어 올릴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오늘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둔중한 소리를 들으며 설사 불가항력적인 재난으로 모든 것이 휩쓸려 갔다고 해도 등을 돌린 채 그 잔해들을 불태우지 말 것을, 마지막 믿음까지 기만으로 일관하는 그 한 줌의 욕망이 관계의 시간들에 염치 없이 올라타 서로의 시간을 잘라내어 연료로 태워내며 움직이던 배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고 해도 단박에 허물어버리거나 재빨리 내팽겨치지 말 것을, 새기고 또 새기는 시간. 오함마와 곡갱이를 들고 정직하게 하나 하나, 순간 순간을 정성을 다해 발라내어 묻어야겠다. 내가 힘을 내어 조형해야 하는 것이 새 집이 아니라 무덤임을 알겠다. 그 누구도 살지 못한다해도, 그 누구도 찾지 않는다 해도, 형체조차 남아 있지 않은 불타버린 시간의 잔해들이 쉴 수 있는 무덤(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노인의 몸짓으로, 설사 그렇게 노인이 되어버린다 해도.  

 

 

 


_송도 암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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