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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고장난 기계(2)

by 종업원 2014. 10. 12.


2014. 10. 12



단순하고 명징한 일상이 매일 지속되고 반복되는 것이 새삼 신기한 일임을 알게 되는 순간은 그것이 중단되거나 파괴되었을 때다. 너무나 복잡하고 비논리적이어서 하나의 어휘로 지칭할 수 없는 탓에 우리는 그것을 짐짓 모르는 척, 슬그머니 '일상'이라고 무심히 불러온 것이다. 이 복잡하고 신기한 일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고 반복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일상이 (의심없이) 지속된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이라는 이 복잡하고 비논리적인 구조가 어떻게 '지속'이라는 상태로 유지되는지 조금도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기계를 처음 만나는 순간 또한 그것을 편리하게 사용할 때나 아무런 문제 없이 작동할 때가 아니라 고장났을 때다. 기계가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작동의 구조에 대해, 작동의 원리에 대해, 작동의 동력에 대해, 바로 그 자명한 것들에 대해 뒤늦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장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쉽다. 고장난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대체하는 단기 기억 상실을 반복할 때 기계에 관한 하나의 진실에 영영 다가설 수 없게 된다. 기계의 고장은 버튼 하나만으로도 단순하고 명징하게 '작동'하는 구조가 실은 환상에 가까운 것임을 우리에게 알린다. 이렇게 말하자. 모든 기계는 이미 고장 나 있다. 고장은 기계의 조건이다. 


고장난 기계는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비로소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해야 하는 상태를 의미 한다. 기계가 고장이라는 조건 위에서만 성립한다는 것을 감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용'과 '작동'의 다른 용법을 발명할 수 있다. 기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단 하나의 진실은 그것을 명징하고 단순한 작동을 의심없이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고장이라는 조건 위에서 사용의 용법을 계속해서 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고칠 수 없다'는 것은 절망해야 할 한계가 아니라 딛고 서야 할 조건이다. '어긋남'이라는 세상의 구조, 고장난 기계는 바로 그 세상의 이치를 우리에게 알린다. 


고장난 기계를 고장난 상태로 계속 사용하는 것. 그 시도와 실험이 기계의 쓰임과 기능을 바꾼다. 오직 고장만이, 고장을 조건으로 하는 쓰임과 용법의 발명만이 '없는 길'을 생산하는 거의 유일한 동력이다. 글쓰기라는 고장난 기계.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어긋나 있는 세상의 이치를 조건으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강박적인 실천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그 누구보다 열패감에 자주, 그리고 깊게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글쓰기란 세상이 고장 났음을 고발하는 폭로가 아니라 그것이 세상의 고장을 조건으로 한다는 것, 다시 말해 글쓰기란 고장난 기계를 고장난 상태로 반복해서 사용하는 행위이며 그 실패의 반복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실패의 반복 속에서 더욱 명징해지는 것은 '고장'이라는 조건이다. 고장난 기계를 고장난 상태로 사용한다는 것은 기왕의 매뉴얼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매뉴얼을 만든다는 것이다. 글쓰기의 매뉴얼 만들기. 그것은 차라리 매뉴얼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오랫동안 글을 썼음에도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듯한 열패감과 절망감의 출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장난 기계를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글쓰기라는 반복 행위. 그러나 돌아갈 수 없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의 고장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그럼에도 그 무용한 글쓰기를 반복해왔으니 글을 쓰기 전으로, 그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 처음의 자리를, 글을 쓰기 전의 상태를 불태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칠 수 없음, 돌이킬 수 없음이라는 절망. '관계'의 절망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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