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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각자의 극단으로, 생활 스타일로―다시 ‘생활-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며

by 종업원 2015. 12. 6.

 

 ‘극단적인 생활’이란 말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극단적’이라는 시한부의 뉘앙스를 품고 있는 관형사가 지속성을 담지하고 있는 ‘생활’이라는 명사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꼴이 어떤 것이라고 해도 ‘극단적인 것’ 또한 고유한 생활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분명 하나의 생활이지만 머지않아 파괴될 것을 예감할 수 있는 시한부 생활엔 ‘극단’과 ‘생활’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극단’이 극구 피해야 하는 생활의 감각처럼 여겨지는 것은 생활이란 무난하면서 평온하며, 반복할 수 있는 조건의 문턱이 낮아야만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극단적인 생활’이란 당장은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곧 무너져 내릴 것임을 예감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를 가리킬 뿐이다. 이를 ‘생활’엔 ‘극단’이 없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우리네의 생활은 정말 다 하나 같이 비(非)극단적적이며 반(反)극단적인가? 그렇게 ‘무난’하기만 한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난’이야말로 극심한 혼동에 스스로를 내맡겨버릴 때만 획득할 수 있는 잠깐의 평화가 아닌가. 복잡함이나 어려움이 없다는 것, 그것이 현실에 가능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온갖 어려움으로 점철된 이 세계의 조건과의 대면과 맞섬을 한사코 피하거나 방기해야만 한다. 무난(無難)이란 바로 이 세계의 조건, 달리 말해 생활의 조건인 복잡과 혼란을 없는 것처럼 간주하는 허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생활이 이런 도피와 방기를 통해서만 건사 가능한 것이라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무난’이 아니라 외려 ‘극단’이다. 모든 생활은 실로 극단적이다. 각자의 생활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극단이라는 태도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런 이유로 각자의 생활 속엔 저마다의 ‘고유한 극단’이 자리하고 있다. 

 

글쓰기는 어떤가? ‘극단적인 글쓰기’라는 말의 조합은 멀찍이서는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제 힘으로 글을 써본 이들은 단박에 안다. 극단적인 글쓰기는 웬만큼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도 아님을. 자주 오르내리는 것에 반해 ‘극단적인 글쓰기’를 경험한 이들은 극히 드물고 시도조차 그리 많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의 글쓰기는 대체로 무난하지 않은가. 평범하다는 뜻이 아니다. 극심한 혼동을 버텨내지 못하고 ‘글쓰기라는 양식’에 스스로를 맞추거나 내맡겨버린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우리는 글쓰기 앞에서 자주 무(기)력해진다. 한껏 응축되었던 (생활의) 에너지는 글쓰기 앞에서 공기 빠진 풍선처럼 스르륵 위축되거나 아무런 원칙을 요구하지 않음에도 무언가 더 준비해야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무원칙의 원칙’이나 성을 지키는 ‘문지기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고압적인 흰 여백(白紙) 앞에서 서둘러 꽁무니를 빼곤 한다. ‘극단적인 글쓰기’를 이렇게 고쳐 쓸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글쓰기’를 가리키는 말이자 ‘글쓰기’라는 고압적인 양식의 성문을 밀고 들어가거나, 뛰어 넘어버리거나, 부셔버리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말이다. 글쓰기를 생활을 일구고 가꿀 수 있는 마당으로 삼기 위해선 ‘극단’이라는 저마다의 생활 스타일을 글쓰기라는 양식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글쓰기가 생활을 잠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생활-글-쓰기’는 생활/글/쓰기가 서로 어긋매낌으로써만 가까스로 이어질 수 있다. 극단 속에서, 극단을 견디고 버티며 극단을 밀고 나가는 일을 부단히 시도하고 연마하는 것을 통해 생활-글-쓰기라는 팽팽한 긴장의 형식이 유지된다. 그 불화의 긴장 속에서 영글어가는 것을 우리는 스타일(style)이라고 부른다.

 

‘생활-글-쓰기’는 무난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생활’이 정체될 때 ‘글’이 ‘간여’하여 흔들어 깨운다. 갑자기 침범해 긴장하게 만든다. 글이 고압적인 태도로 생활을 단순화하며 잠식하려 들 때 부단히 겪어온 ‘극단’의 양식으로 맞선다. 쓸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릅쓰고 쓰는 행위가 생활과 글의 불화를 견뎌낼 수 있게 한다. 이 팽팽한 긴장의 끈을 유지하는 것이 지치고 피로해질 때, 불현 듯 모짝 무용하다 여겨질 때 각자의 극단으로, 생활 스타일로 연결된 ‘모임’이 불쑥 손을 내민다. 망설임 없는 도움의 손을 잡고, 바로 그 손으로 생활을 돌보고 글을 쓴다. 생활 하는 손, 글을 쓰는 손, 망설임 없이 그 손을 누군가의 글과 생활에 극적으로, 단적으로 내미는 일. 그 힘을 ‘생활-글-쓰기 모임’의 (극단적인) 스타일이라 부르고 싶다.

 

 

<생활-글-쓰기 모임> 2기 1회 여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