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문학의 곳간> 50회_김중미, 『꽃은 많을수록 좋다』(창비, 2016)
_부산 중앙동 '한성1918'_2018. 11. 24
사치의 가계부를 쓰는 시간
늦은 아침을 지어먹고 어제 사람들과 사용했던 그릇들을 씻는 후 차를 내려 마시니 한낮의 빛이 서재를 가득 채운다. 초겨울 햇살에 평소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먼지와 잡티(잔해물!)들이 눈에 밟혀 비질을 하니 다소간 상쾌하다. 늦은 새벽까지 ‘문학의 곳간’에서 나누었던 말을 되뇌이고 곱씹으며 혹여라도 놓치고 있는 건 없는가 염려하며 기록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헤아려보았지만 ‘그 순간’에만, ‘그 현장’(between)에서만 드러내는 장면(scene)이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휩쓸리고 휩쓸려간 말들과 감정들을 애써 붙들어두기보단 저나름의 길을 가도록 잘 배웅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어제의 만남들이 남긴 잔상을 뒷모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 돌려세우기보다 잘 가라고, 어제도 고마웠다고 손 흔들며 배웅하고 싶다.
어제 저마다가 준비해온 선물을 나누며 ‘사치’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렸는데, 여느 때와 달리 참석자 수가 적어서인지 사치의 감각을 다르게 체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내가 말하는 ‘사치’란 조금 부족한 상태로 잘 나눌 때만 발생하는 선물 같은 것이어서 많이 나눌수록 그 크기가 커진다. 시간을 쪼개어서 말을 보태는 것, 한 조각을 능히 다시 몇 조각으로 더 나눌 수 있는 것이 ‘사치’다. 말과 감정을 내어 놓고, 가다듬고, 벼리는 시간이 서로의 자아를 향해 애걸복걸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충분한)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라면 그 또한 사치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어보인다. 차를 내리는 동안 한달에 한번 돌아오는 <문학의 곳간>이 ‘사치의 가계부’를 쓰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사치의 가계부 목록엔 대차대조표가 아닌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제도 충분히 나누었는가, 다 말하지 않고도 충분했는가, 말과 감정을 충분히 가다듬고 벼렸는가, 넉넉하게 들었는가, 자리를 내어주고 당신의 환대에 응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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