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글살이11 짓는 동안 흐르는 콧노래 2025. 1. 28‘밥 먹을 시간이 없다’는 말을 몸으로 겪는 나날이다. 문턱 앞에서 풀이 죽거나 머뭇거리는 버릇 탓도 있겠지만 여러 일을 해내야 하는 때여서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첫끼를 챙길 때가 잦다. 밀린 일이 있어도 끼니만큼은 느긋하게 챙겨왔는데, 요즘은 끼니를 건너 뛰게 된다. 늦은 끼니를 챙기며 이 바쁨이 무얼 말하는지 가만히 돌아보았다.지난 일요일엔 곳간 새책 디자인 이야기를 나누려 장전동 그린그림 작업실에 갔다. 내가 사는 곳이 다대포 근처이니 지하철 1호선으로 놓고 보면 끝에서 끝이다. 그런 까닭에 예전엔 운전을 해서 가곤 했는데, 지금은 지하철을 탄다. 서부산에서 동부산까지 가는 동안 정차하는 역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모습이 제각각이라 드문드문 그걸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 재밌다... 2025. 1. 28. 나날쓰기 2025. 1. 3글쓰기를 미룬다.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룰 수 없을 때까지. 어제 써야 했던 글을 쓰지 못했기에 오늘 써야 하는 글도 쓰지 못한다. 쓰지 못한 글쓰기 굴레에 갇혀 숨가쁜 나날이 이어진다. 청소를 미룬다. 지저분한 자리를 피해다닐 순 있지만 그럴수록 더 눈에 밟힌다. 먼지가 쌓이고 얼룩이 진다. 너저분하고 어수선하다. 그 모든 살림에 등을 돌리고 앉아 글쓰기를 미룬다. 작업실 가는 길에 이오덕 일기를 읽었다. 한길사에서 펴낸 ⟪이오덕 교육일기・2⟫(한길사, 1989)와 양철북에서 펴낸 ⟪이오덕 일기・4⟫(양철북, 2013)를 챙기고선 지하철에서 펴보았다. 4권은 1992~1998년 사이에 쓴 글을 추린 것인데, 지난달 이응모임에서 함께 읽은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최종규 편집.. 2025. 1. 5. 작업실 가는 길 2024. 12. 19잠자리 자세가 잘못된 탓이라 여겼는데, 아닌 모양이다. 보름이 지나도록 목과 어깨 결림이 나아지질 않는다. 저녁이 되면 더 결리고 밤이 되면 그만 누워야할 정도로 불편하다. 꽤 오래 달리지 못했고, 작업실도 나가지 못했다. 마음이 바쁜 탓이다. 그럴수록 이상하리만치 일머리가 잡히질 않는다. 며칠, 아니 몇 주를 그냥 흘려보낸 듯하다. 오늘은 점심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간단히 도시락도 싸서 작업실로 간다. 지하철역까지 1km를 천천히 달렸다.강의가 없는 날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지하철은 걷고, 뛰고, 읽는 일과 이어져 있지만 무엇보다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게라도 부대끼지 않으면 사람들과 잠시라도 섞일 일이 없을 것만 같다. 지난 주 그린그림과 디자인 회의하러 .. 2024. 12. 19. 흥건한 땀 2024. 12. 4강의를 마치고 강의실을 나서서 종종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동안 겨드랑이에 땀이 가득하다는 걸 알아차린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일거리를 쳐내려 숨가뿐 일꾼처럼, 미로를 빠져나가려 허우적대며 길찾는 사람처럼, 모두 떠난 자리에 남아 홀로 뒷수습을 하는 쓸쓸한 사람처럼 오늘도 강의실에서 남몰래 땀을 흠뻑 흘렸구나. 무대에 선 배우나 가수라면, 운동장을 뛰는 선수라면, 일터에서 몸을 바삐 움직이는 일꾼이라면 이마에서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이 잠깐이라도 반짝일 수 있겠지. 겨드랑이에 흥건한 땀이 강의실 바깥에서 차갑게 식는 순간, 강의 하는 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안간힘이 잠시 수치스럽다. 동시에 여전히 안간힘을 쓰며 버텨내고 있구나, 무언가를 붙들려 애쓰고 있구나 싶기도 해 .. 2024. 12. 15. 상복을 입고 묻는 안부―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김애란이 쓴 단편 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엔 다급한 요청이 두 번 나옵니다. 처음은 대학 시절 좋아했던 선배로부터 온 요청이고 그 다음은 어린 시절, 물에 빠졌는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순간입니다. 이 두 요청엔 다행히 응답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요청엔 ‘나’가 응답을 했고 두 번째 요청엔 ‘병만’이라는 또래 친구가 응답해주었습니다. 그 응답의 흔적이 팔뚝에 남아 있어요. 손이 아니라 팔뚝이라는 점에 주목해봅시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팔뚝을 잡았을까요. 그건 잡은 것이라기보단 붙든 것에 가까울 겁니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누군가의 팔뚝을 붙듭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지 않았을까요. 헌데 손이 아니라 팔뚝을 붙들었다는 건 ‘어긋남’.. 2024. 11. 26. 흐르다 2024. 11. 17 손수 밥을 지어 먹을 때마다 빠짐없이 ‘정말 맛있구나’라 여겨져 즐겁다. 내 어머니는 이런 나를 떠올릴 때마다 혼자서 밥해먹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얼마나 힘드냐고 걱정하시지만 아주 가끔 몸이 아플 때를 빼곤 힘들거나 귀찮다 여긴 적이 없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또 어찌보면 꽤나 놀라운 일이다. 요즘은 살림을 흐르게 하는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일에 대해 곰곰 생각해볼 때가 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까지 얼추 1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300m 정도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해서 비가 많이 오거나 많이 지칠 땐 가끔 택시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고, 늘 조금도 힘들지 않다 여긴다. 집으로 가는 길이니 당연하지 않나 싶다가도 문득 이 힘이 어디서부.. 2024. 11. 22. 아저씨, 어디가세요? 2024. 10. 8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발걸음을 재촉하며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1층 이웃집 현관문이 슬며시 열린다. 혹여나 놀랄까봐 잠깐 멈춰 섰는데, 10살 남짓한 어린이가 천천히 걸어나온다. '안녕~!'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성큼성큼 앞질러 나갔다. 지금쯤 진주문고에 닿았으면 좋겠구나 싶은 시간이어서 마음이 조금 바쁘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손전화기에서 길안내 어플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방금 지나쳤던 아이가 가던길을 돌아 차 곁으로 다가온다. 창문을 여니 고개를 숙이고 나를 찬찬히 보더니 묻는다. 아저씨, 지금 어디가세요? 아저씨, 지금 서점 가는 길인데, 왜 그래? 그냥 궁금해서요. 저는 체육관 갔다가 옆에 회관 갈 건데...(뒷말은 목소리가 작아서 들을 수 없었다) 그래, 잘 다녀와~ .. 2024. 10. 8. 꼬리라고만 말할 수 있다면 2024. 10. 5 자고 일어났더니 꼬리가 생겼다! 아이 몸은 날마다 달라진다. 달라지는 몸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건 아이다. 아직 뼈가 여려 잘 다치기도 하지만 잘 자란다고도 할 수 있고, 잘 바뀐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그림책은 달라진 몸을 알아차리는 일이 어린이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돌보는 일과 이어진다는 눈길을 담았다. 나를 가장 알 안다고 여긴 엄마 눈에 보이지 않는 꼬리가 동무 눈엔 보인다. 어른들 눈엔 보이지 않는 게 어린이들은 알아본다. 이건 그저 이야기 설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라 작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 서고, 편견없이 바라보기 때문에 아이들 눈엔 보인다는 뜻을 담았다고도 볼 수 있다. 어린이 몸이 달라지는 걸 곧장 ‘2차 성장’이라고만 봐선 안 되지 싶다. 스스로 몸을 살피는 일은.. 2024. 10. 5. 달리며 펼치는 살림―<진주 쓰깅> 자리를 열며 돌아본 달리기 살림 2024. 10. 4군대에 끌려가서 축구나 족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언제부터 달렸나를 떠올려보다가 어지간히도 ‘운동’을 하지 않은 내가 어쩌다 달리고 쓰는 모임을 열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강원도 철원 산골짜기에서 해가 질 때부터 해가 뜰 때까지 철책선 앞에서 보초 근무를 서야 했기에, 집합 명령이 있었음에도 누가 족구장에 나오지 않았는지 자세히 살필 겨를이 없어 나는 보일러실에 숨어 시집을 읽으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소대 단위로 떨어져 지낸 부대 특성 때문에 축구를 할 일도 없었다. GOP 근무를 철수하고 바깥 부대로 돌아가서는 계급이 조금 높아져서 축구나 족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만큼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낸 내가 숨 가쁘게 몸을 움직이게 .. 2024. 10. 5.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만화책 읽기 1) ―다카하시 신, <좋은 사람>1, 2(1993 한국어판 1998) 2024. 10. 3 지난 일요일 이른 10시부터 최종규 선생님을 이끔이로 삼아 이오덕 어른이 펼친 뜻을 따라 걸어보는 모임을 마친 뒤, 이어서 부산에서 펴낼 어린이잡지 회의를 하니 늦은 5시가 훌쩍 넘었다. 최종규 선생님과 함께 중앙동 곳간 사무실로 넘어와 책 펴내는 이야기를 나눌 참이었는데, 저녁거리를 사러나가는 길에 어제 사지 못한 책이 눈에 밟힌다고 해서 보수동책방골목엘 들렀다. 일본 문고본 여러 권과 보기 드문 잡지 몇 권을 챙겨 돌아나오는 길에 만화책으로 꽤나 유명한 국제서점에 들렀다. 최종규 선생님은 그곳에서도 귀신 같이 숨은 책을 척척 찾아내어 살펴보시길래 책방 구석까지 들어가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만화책 더미를 훑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만화책 꾸러미를 보곤 최종규 선생님께.. 2024. 10. 3.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