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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불쑥 건너는

by 종업원 2022. 3. 20.

 

밭은 잠에서 깨면 몸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나와”[각주:1] 있는 손가락은 무언가를 잡기보단 오늘도 무심하게 환한 이 세상이 무사한지 더듬어볼 뿐이다. 극적인 것이나 드라마틱한 기대 없이. 벽에 귀를 가져다대면 벽 너머의 희미한 소리가 금지된 무언가가 번지듯 천천히 선명해지는 것처럼, 멀리서 오고 있는 열차의 기척을 희미하게 느끼기라도 하듯 지난밤과 잠과 꿈과 몸의 기척을 더듬어본다. 서로가 너무 가깝거나 아득해서 온통 뿌옇고 희미할 뿐이다. 물 한 잔이 필요하다. 작은 파도가 일렁일 때 잠시 나타나는 물보라처럼 차갑지 않은 물 한 잔이면 몸에도 작은 물보라가인다. 소꼽놀이용 청진기를 가져다대보는 꼴이겠지만 미동 없는 몸을 무심하게 살피며 전자시계의 숫자가 바뀌는 것처럼 변함없이 무사한 것들의 목록을 더듬어본다. 오늘 아침엔 느닷없이 <연극이 끝난 후>(샤프, 1980)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모임 이후에 선명해지는 건 보람이 아니라 불안이다. 그런 정서 타임라인에 익숙해졌지만 ‘어제의 무대’ 잔상이 어지간했는지 기묘한 쓸쓸함과 놀랍게 세련되었던 오래된 노래 한 곡을 속으로 흥얼거리며 어떤 퍼포먼스(들)를 반추해본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날렵하게 움직여 불쑥 (책)선물을 건네던 장면. ‘불쑥 건넨 선물’이란 말은 그야말로 이중표기인데, 선물이야말로 예측불가능한 것을 불쑥 내미는 것이기 때문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글쓰기 또한 온통 이중표기로 점철되어 있다. 무언가를 말하지 않기 위해 쓰는 경우도 있다지만 반려동물의 목덜미 쓰다듬는 것처럼 아무리 반복해도 더 반복하고 싶은 행위와 글쓰기는 어딘가 닮아 있다. (바르트라면 사랑이야말로 반복할수록 진해지는 ‘차잎’이라고 했을 것!)[각주:2] 반려동물의 목덜미를 만지는 손은 여전히 목이 마른 듯 안달이 나있지만 글을 쓰는 손은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으로 나뉘긴 하겠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생활을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라면 반복, 중복, 이중과 같은 겹침의 행위 없이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여겨질 정도다. 생활글은 생활 속에서 번뜩이는 순간을 낚아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유별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행위의 반복 속에서 무심하게 자란 것들을 발견하는 일이니까, 품에 끼고 애면글면하는 게 아니라 무심히 보살피는 일이니까 말이다. 살림의 기본꼴을 ‘쓸고 닦는다’고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쓸고 닦는’ 행위는마침내 살림에 광이 나는 순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기보단 무심히 쓸고 닦는 행위를 언제까지고 반복할 수 있는 리듬을 유지하는 힘, 그 리듬을 타고 반복하는 힘을 지속하는 방향을 향해 있다. 살림이야말로 저마다가 생활 속에서 수행(performance)하고 있는 맨손 운동이다. 맨손 운동의 이력은 매끈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날렵하게, 때론 우아하고 근사하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

누군가가 선물을 건낼 때 날렵하고, 때론 우아하고 근사한 몸짓을 보곤 했다. 나는 선물을 잘 하는 사람으로부터 늘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건 넉넉한 품이 아니라 그 사람이 조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살림살이에 관한 것이었다. 좁고 복잡한 골목길을 망설임 없이 걷는 걸음처럼, 자주 만들어먹기에 뚝딱 내어놓을 수 있는 요리처럼 불쑥 내미는 선물엔 그 사람이 반복하고 있는 맨손 운동의 이력이 쌓여 있다. 날렵한 몸짓으로 책장에서 책을 빼내어 곧장 건네는 행위는 ‘인용하기’와 닮아 있다. 선물이 그런 것처럼 인용 또한 저마다의 다른 목적을 가지겠지만 그 기저엔 뽐내거나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보단 나누고자 하는 의지가 자리 한다. 모두가 누구보다 많이 읽으려고 하지만 그걸 나누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드물다. 인용을 잘 한다는 건 곧장 나누는 연습이 잘 되어 있다는 뜻이다. 선물 하기와 인용 하기가 같은 선분 위에서 가까이 자리한 하나의 점으로 어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선분 위에서, 점들의 보이지 않는 어울림 속에 각자가 쓴 글이, 저마다의 생활이 불쑥 내민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가 내게 조약돌 하나를 선물한 이가 있었다. 손바닥만한 화분 하나를 선물 받은 날도 잊을 수 없다. 20대중반에 직접 만든 수첩을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그 수첩은 책장 한켠에 꽂혀 있다. 도무지 그 수첩을 쓸 수가 없다. 어떤 선물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겠지만 많은 선물은 불쑥 건네진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누구보다 잘 건넨다는 걸 알고 있다. 지켜야할 것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아낌없이 줘버리는 것들. 때론 그들이 건네는 선물 속엔 소중한 것을 끝까지 지켜낼 자신이 없어서 쉽게 포기해버리는 목록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줘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넴 속엔 부탁하는 마음이 동봉되어 있다. 2000년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 정재은의 <고양이를 부탁해>(2001)에서 ‘지영’이 한 때 단짝이었던 ‘혜주’에게 주고 싶었던 건 길고양이 ‘티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낼 용기가 생기지 않을 때 선물은 때론 부탁처럼, 때론 구조 요청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선물을 하는 사람,인용을 하는 사람,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는 사람, 보이지 않는 생활을 애써 돌보는 사람은 건네는 힘으로 건너가는 사람이다. 선물을 건네며, 어딘가로 건넌다.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때론 다른 도시로 훌쩍 건너가버리기도 한다. 인용은 언제나 굴절을 일으켜 다른 곳에 도착하고 간절한 마음은 좀처럼 정확한 목적지에 당도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활은 알콜처럼 어느새 사라져버리곤 한다. 선물과 인용, 글쓰기와 생활을 하나의 선분 위에 올려놓는다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이들의 근사하고 우아한 어울림이 아니라 지겹게 반복되는 매일이라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걸 알지만 오늘도 누군가에게 선물 하는 사람이 있다. 인용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 살림살이를 돌보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무언가를 건네며 건너가려고 한 다. 선물, 인용, 글쓰기, 생활은 대기실에 입장하기 위한 패스워드(이면서 passport)이기도 하다. 대기실에선 누구나 다소 관대해진다. 곧 어딘가로 떠날 예정이고 당신도 그럴테니까. 우린 어쩌면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니까. 차가 도착하기 전에 급하게 무언가를 건네고, 무언가를 쓴다. 이 대기실에서 만큼은 우리는 잠시 같은 시민권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생활문학탐구 2강 후기_2020. 7. 30

 

  1. 진은영, 「긴 손가락의 詩」, 『일곱 개의 단어로 만든 사전』, 문학과지성사, 2003 [본문으로]
  2. 바르트와 차잎은 참으로 어색한 조합이지만 바르트를 탐미적인 것으로만 전유하는 걸 경계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의 문 장을 벌컥이며 단박에 마실 수 없게 차잎을 띄워보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