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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생활파(派)의 모험

by 종업원 2023. 1. 18.

2020. 8. 14

 

  습관과 버릇에 대한 생활글을 써보자는 제안은 각자의 생활에 대한 ‘점검’과 ‘반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단 생활 속에서 홀로 ‘탐구/탐험’(조형) 하고 있는 ‘장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토로조차 타임라인의 흐름 속에 휘말려 들어가 그저 하나의 게시물로 업로드 되고 업데이트되는 형편이지만, 만약 당신이 ‘생활파(派)’라면 끝없이 업로드되는 먹거리들의 아귀다툼 바깥에서 애써 조형하고 있는 원칙에 대해 할 말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가령, 오늘 (남들처럼) 먹은 것들을 전리품처럼 전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늘도 끝내 먹지 않은 것들의 목록 같은 것 또한 있겠지요.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은 것들, 업로드할 수 없고 업데이트가 불가능한 것들의 목록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목록에서 생활 속에서 감행하고 있는 모험의 면면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습관과 버릇은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발목을 잡고 있는 물귀신 같은 것이거나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사슬처럼 생각되지만 애써 조형하고 있는 습관과 버릇에선 생활 속에서 감행하고 있는 모험과 탐험의 기록이 새겨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록을 일러 생활 표류기라 불러도 좋을까요. 아니 생활 탐험기나 모험기라고 부르는 게 좋겠군요.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온전히 전달되는 법이 없고 애를 쓰며 기다렸던 것들은 번번이 기대를 배반하곤 합니다. 이러한 기울어짐을, 누구도 그 길을 가라고 하지 않았지만 국가/공동체/관습/통념/정상성/체계/명령 바깥으로 나가려는 일련의 행위를 어긋냄의 수행성이라고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얼핏 생활을 수행의 장소로 삼으려는 생활(파)과 1분 1초라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자기계발은 닮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근하고 채찍질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생활파가 발을 조금만 헛디뎌도 변화에 대해 완고한 보수파로 미끄러지는 이유 또한 이런 친연성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생활에 집중하다보면, 생활을 탐닉하는 지경에 이르기 일쑤고 그렇게 생활 밖에 남지 않는 지경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생활을 미지의 영역으로 재설정해 그곳을 탐험해볼 순 없을까, 그렇게 생활을 활력의 장소로 변주할 수는 없는 걸까, 궁리를 하게 됩니다. 생활을 급진화(radical)의 진지로 삼아보고 싶은 거죠. 늦은 오후 ‘두 번째 몸’을 깨우기 위해 나선 산책길에서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오솔길에 진입하는 걸음처럼, 조심스러움과 기대감이 불어넣는 기분 좋은 긴장감과 함께 오늘도 어김없이 떠난 작은 모험 속에서 생동하는 의욕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활문학탐구> 3강 후기

 

늘 시간이 부족해 제비뽑기로 이야기 순서를 정해보았다_책방 한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