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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오늘도 우리는 테이블 위에서 우물을 길어올릴 테니까

by 종업원 2020. 7. 21.

 

 

아침에는 책상이 되고 점심엔 식탁이 되며 저녁엔 테이블이 되는 곳은?’ 이건 사물이 아니라 장소에 관한 수수께끼다. 사람들의 손길이 어울려 그곳에 숨결을 불어넣을 장소가 조형된다. 서로의 손길이 만나는 , 나누고, 만들고, 더하고, 덜기도 하는 곳은 언제나 테이블 위에서다. ‘책상 어쩐지 주인이 있을 것만 같고식탁 음식이 없다면 조금 쓸쓸해진다. 하지만테이블 손가락을 가지런히 올려두기만 해도 충분하다. 모든 장소엔 테이블이 있다. 위에서, 곁에서 사람들이 만나 어울린다.

 

<책방 한탸> 개의 테이블이 있다. 하나의 테이블은 당연히 책을 위한 자리로 사용 되고 다른 하나는 책방 방문객들이 앉아서 책을 보는 곳으로, 나머지 하나는 주로 주인장의 몫으로 사용 되는 듯하다. 생활글쓰기 모임 <잠깐 (빌려) 쓰겠습니다>(2019 11~2020 1) 열리는 월요일 저녁엔 개의 테이블이 모두가 둘러 앉을 있는 하나의 테이블로 몸을 바꾼다. 테이블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 앉아 각자의 생활 속에서 길어올린 것들을 내어놓는다. 금새 휘발되어 사라지기 쉬운 일상적인 감정일지라도 누군가가 말을 보태며 응답을 하면 작은 열매처럼 단단해진다. 매일매일 반복하고 있는 습관이 누군가에게는 한번 해보고 싶은 모험으로, 오늘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한. 그렇게 말과 글을 주고 받는 동안 평범함 속에 쟁여져 있는 비범함이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쌓인다. 장소에서 우리는좋은 이란 곁에 있는좋은 독자 지켜내고 발굴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서점은 이쁜 책으로 가득한 아기자기한 공간에 위태롭게 쌓아올린 취향의 최전선쯤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이곳이야말로 도심 속의 대피소에 가깝다. 읽기와 쓰기를 허용하지 않는 바쁜 일상 속에서 독립 서점은 생활과 사유의 격전지다. 해야 일로 빼곡한 다이어리에 당장의 쓸모를 찾을 없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옮겨적는 사람은 오늘도 생활 속에서 어깨 싸움을 하며 읽고 쓰는 시간을 지켜내려 애쓰고 있다. 오래 전에 사라진 우물가처럼 작은 책방에선 누구라도 목을 축일 있다. 이렇게 모임이 열리는 날이면 모두가 우물의 주인이 되어 서로에게 잔의 물을, 마디의 말을 아낌 없이 선물한다. 생활은 홀로 있을 고립의 영역으로 기울곤 하지만 함께 어울릴 그곳은 저마다의 이력 아래에 쟁여 있는 고유한 가치를 끝없이 길어올릴 있는 우물이 된다. 

 

어쩌면 독립 서점은 대피소가 아니라 우물가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이곳의 테이블 위에선 재산이든 앎이든 위계가 없으니까, 것과 너의 것을 구분짓는 소유권의 장벽이 낮으니까, 그렇게 낮은 장벽이라면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서로에게 쉽게 건너갈 있을 테니까, 월경과 횡단의 경험 속에서 생활과 모험이 다른 것이 아님을 있을 테니까, 각자의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은 서로에게 건네지면서 고여 있지 않을 있을 테니까, 길어올릴수록 풍성해지는 모두의 곳간(the commons) 작은 책방에서, 테이블 위에서 오늘도 열릴 테니까. 

 

 

 

<잠깐 (빌려) 쓰겠습니다>(책방 한탸+회복하는 글쓰기) 후기_2019. 11~2020. 1

 

 

 

 

 

 

국제신문 기사[동네책방 통신] 퇴근길에 불쑥 들러…함께 ‘글 짓는 마음’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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