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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긁어내고, 벗겨내고, 지우는 글쓰기

by 종업원 2023. 7. 22.

 
‘하얀 바탕’이 지운 것들
 
글쓰기는 없던 무언가를 새롭게 더하는 일이 아니라 있던 것을 발견하거나 무언가를 빼고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생활 속에 소리 없이 쌓인 더께를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몰랐던 얼굴’을 만나게 되는 청소처럼 말이다. 하얀 바탕 화면 위에 검은색 글자를 ‘채워’나가는 작업을 글쓰기라 불러왔지만 외려 ‘하얀 바탕’을 ‘긁어’내고 ‘벗겨’내는 일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앞에 놓인 ‘하얀 바탕’은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 ‘백지’라기보단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원치 않는 역할을 떠맡거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동안 쌓인 더께에 가깝다. 윗사람 앞에 설 때, 학교에 갈 때, 친구를 만날 때, 오늘도 누군가가 되어야 할 때마다 우리는ᅠ자신을 지우고 ‘하얀 바탕’이 된다. 억지로 웃어야 할 때,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어야 할 때, 표정을 지우거나 바꿔야 할 때 우리는 매순간 하얀 가면을 쓴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각종 경력들로 빼곡하지만 실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울퉁불퉁한 이력을 말끔한 상태로 보기 좋게 만드는 일이다. ‘하얀 바탕’은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저마다가 품어온 살림 이력을 지워놓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명령이 작동하는 ‘장치(dispositif)’에 가깝다. 백지(하얀 바탕) 앞에서 쉽게 무기력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한 ‘하얀 바탕’과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건 새로운 것, 희망적인 것, 교훈적인 것, 진취적인 것을 써넣어야 한다는 명령 앞에 선다는 것이다. 이제 채워 넣기를 그만두고 채워 넣으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긁어내고 벗겨내고 지우는 글쓰기 말이다. 
 
낯선 자리에서 긁어내고 벗겨보는
 
‘어떻게 채워 넣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울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하얀 바탕’ 아래에 쌓인 이력을 드러내는 긁어내기와 벗겨내기면 충분하다. 초등(국민)학교 미술 시간에 해봤던 ‘스크래치 기법’이라는 걸 떠올려보자. 크레파스나 유화물감으로 색칠한 밑그림 위를 검은색으로 덧칠한 다음 송곳이나 칼 등으로 긁어서 밑그림이 드러나게 하는 이 기법을 글쓰기와 연결시켜볼 수 있다. 저 아래에 어떤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모르지만 단일한 색(미술시간엔 검은색을 칠하지만 앞서 말한 ‘하얀 바탕’을 떠올려도 좋다)으로 뒤덮인 표면을 뾰족한 것(연필!)으로 긁어내면 알록달록한 색깔이 드러난다. 나는 종종 낯선 사람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나를 긁어내거나 벗겨보는 일에 가깝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 싶은 각자 모습은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하는 자기소개는 그럴듯해 보이는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드러내거나 한번쯤 그래보고 싶은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번 자기소개가 어렵고 곤혹스러운 것 또한 단지 부끄러워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긁어내거나 벗겨보는 이런 면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는 채우고 더해야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긁어내고 벗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 청소, 기도, 글쓰기
 
더하거나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지우는 글쓰기는 ‘청소’와 닮아 있다. 무릎을 꿇고 대청마루를 닦는 모습은 오래된 필름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지만 내게 청소란 무릎을 꿇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건 바닥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몸짓이면서 나를 낮추는 일이다. 바닥 가까이 몸을 낮출 때라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닥에 몸을 붙이면 온몸으로 힘을 쓸 수 있다. 그렇게 바닥에 보이는 것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게 청소라 생각한다. 무릎을 꿇고 바닥에 몸을 붙여 온힘을 다해 닦아내다보면 살림살이와 생생하게 만나게 된다. 살림을 꾸린다는 건 어깨 위로 덥석 둘러메기보단 몸을 낮춰 자세히 들여다보며 힘을 다하는 일에 더 가깝다. 청소는 더 하거나 채울 필요 없이 그곳에 있는 것들이ᅠ꾸밈없이 있는 그대로ᅠ머물 수 있도록 이바지 하는 일이다. 청소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글쓰기와 닮았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긁어내고 벗겨내고 지우는 글쓰기는 나조차 잊고 있던 그간 애써온 이력과 만날 수 있게 돕는다. 무릎을 꿇고 바닥 가까이 몸을 붙여 걸레질을 하다보면 청소가 기도와 닮아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기도를 해본 사람은 안다. 기도가 가지는 가장 큰 힘은 바라던 걸 빌거나 이루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낮추는 데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살림 앞에서, 그리고 살림과 어울리며 우리는 기꺼이 무릎을 꿇는다. 그렇게 무릎을 꿇고 온힘을 다해 즐겁게 매만지고 보살핀다. 살림글 또한 그러하며 그 모습을 닮아가야 한다 여긴다.
 


<삶을 가꾸는 살림글쓰기>, 부산시립시민도서관, 2023년 7월 20일 강좌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