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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목소리에 이끌려, 뚜벅뚜벅

by 종업원 2023. 10. 25.

2023. 10. 25

池間由布子 Yuko Ikema - とんかつ

 

池間由布子 Yuko Ikema - Halo (光輪) [2015]

 

어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이 보일 때가 있다. 그 목소리가 끊기지 않고 내내 이어지길 바라며 잠자코 듣다보면 이윽고 여기에 이르게 되었구나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는 모두가 그런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알지 못한 채 무언가를 말로 전달하기 위해 조용히 외칠 뿐이다. 어떤 글에선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기에 있지만 저곳으로, 저곳에 있지만 여기로. 멀어지고 다가오는 것들. 흐르는 것은 마음이다.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글엔 마음이 흐른다.  

오래전 어느날 내 목소리를 찾아야겠다 마음 먹은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내 목소리를 찾고 있다. 글을 쓸 때 '이게 내 목소리가 아닐까' 싶은 순간도 있지만 대체로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잖아'라며 제자리에 단단히 묶여버리곤 한다. 크고 작은 모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이게 내 목소리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잠시 나를 천천히 펼쳐보게 된다. 접힌 시간을 천천히 풀어내는 소리. 그게 목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영영 내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내내 헤매지 않을까. 누군가의 목소리에 자꾸만 이끌리며, 좇으며.

새벽에 깨어 두어 시간 이케마 유코(池間由布子)를 들었다. 아, 마침내 이 어귀에 이르게 되었구나를 천천히 알아차리며 근래에 만난 이들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그 목소리를 따라, 그 목소리에 기대어 여기에 이르게 되었구나. 내 마음도 그 곁에서 함께 흘렀구나. 끄덕끄덕. 까딱까딱. 당신 목소리 곁에서라면 나도 함께 노래 부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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