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 상영 후 이어진 이지훈 선생님 강연이 더 깊이 남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알렝 기로디를 만난 날로 기억될 듯하다. 영화는 (자기) 집에 있지 않고 눈뜨자마자 다른 이들의 집엘 방문하거나 해가 질 때까지 산책하는 떠돌이 '제레미'를 따라다니지만 길목마다 마주치는 필리페 신부님 또한 이 영화를 이끄는 중심 인물이다. 쉼없이 경계선을 타고 다니는 제레미의 걸음뿐만 아니라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작은 마을 곳곳을 바장이며 살뜰히 보살피는 필리페의 걸음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 더,
졸림과 지루함 없이 성사되는 만남은 없다. 책도, 영화도, 사람도 지루할 틈이 없는 마주함에만 이끌릴 게 아니라 지겹고 더딘 마주함을 견디며 자란, 혹은 먹이고 키운 관계를 가꾸어나가는 일이야말로 끈질김(persistent)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졸거나 몸부림치면서 끝내 버텨낸 관계만이 나를 키우고 지켜주었다는 걸 극장에서 새삼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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