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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새야!

by 종업원 2023. 11. 14.

2023. 11. 11

오랜만에 뵌 어머니 얼굴이 희고 밝아서 안심했다. 낮에 최종규 선생님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가을햇살 표정이 밝다고, 그래서 나도 따라 밝아지는 것 같다 전했는데 그 햇살이 어머니에게도 닿았구나, 어머니도 오늘 가을햇살을 머금으셨구나 싶었다. 지난번 뵈었을 때보다 걸음도 좋아보이고 목소리에도 힘이 실려 있어 나도 덩달아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며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며 이제 남들과 똑같아 보인다고 해주셨다. 내게 내려앉은 가을햇살을 보셨나보다. 

앉아서는 10분도 이야기하기 어려우셔서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 아래에 난 작은 종기부터 이웃을 통해서 산 햅쌀이 참 좋더라는 이야기를 거쳐 아버지가 이달 용돈을 지나치게 많이 썼다는 푸념과 고스톱을 치고 다니는 거 아닐까라는 걱정까지. 갖은 이야기가 종합편성채널처럼 가리는 것 없이 높은 데시빌로 쨍쨍하게 흘러나온다. 몇 조각으로 이어붙였는지 짐작조차 되질 않는 붉게 부어오른 어머니의 발을 바라보며 가을햇살 같은 목소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쬐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초읍 삼광사에 다녀오자 말씀하신다. 지금 절에 백만 원을 내고 살아 있을 때 등록을 해두면 죽어서 제사를 챙겨준다는 거다. 따로 제사를 지낼 필요도 없고 뼈를 묻거나 납골당에 넣어둘 필요가 없다는 말씀과 함께. 그리고 당신이 죽으면 뼈는 강이나 산에 뿌려달라고 하신다. 밥에 섞어서 뿌려놓으면 새들이 쪼아 먹을 거라고. 평생을 이렇게 제대로 걷지 못하고 답답하게 살았는데 죽어서도 좁은 관이나 유리 항아리 안에 갇히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 나는 희미하게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느지막하게 속으로 ‘네, 그렇게 할게요’라고 속삭였다. 이제 새들을 찬찬히 살펴야지. 날아가는 새든, 나뭇가지에 앉은 새든, 무언가를 쪼아 먹는 새든 내 어머니 모시고 훨훨 날아갈 새들을 지금부터라도 찬찬히 살피며 눈길로, 마음으로 어루만져야지.

서른이 되기 전, 대학원을 다닐 때 밤늦게 돌아오는 나를 기다렸다가 새벽까지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던 어머니에게 한날은 소원이 무엇이냐고 여쭤봤을 때(군대 가기 전에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여쭈었을 때처럼 한 존재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물음이었다) 떠나는 버스를 달려가서 잡아타는 거랑 뾰족구두 신고 카바레에서 춤추는 거라고 하셨는데 10여년이 지난 오늘은 죽거든 뼈를 묻지 말고 여기저기에 뿌려달라고 하신다. 새들이 물어갈 수 있게 밥에 묻혀서. 

동광길 근처에서 본 잘려나간 가로수 밑둥.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의 뼛가루가 묻은 밥알을 물고 멀리 날아가는 새를 떠올리며 초량동 어느 골목길 어귀에서 눈물을 훔쳤다. 엉엉 울거나 꾹 참지 못하고. 이상하게 작업실까지 걷고 싶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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