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복하는 생활

모임이 쓰다

by 종업원 2023. 7. 2.

2023. 7. 2

화명동 <무사이>에서 열고 있는 한국문학 읽기 모임 <사소한 발명 : 한국문학을 디깅 하기> 2회차 포스터. 첫 번째 시간엔 권여선 작가 신작 소설집 『각각의 계절』(문학동네, 2023)을 함께 읽었다.

1. 화명동 '무사이'에서 이미상 소설가가 쓴 『이중 작가 초롱』(문학동네, 2022)을 함께 읽었다. 여러가지 의미로 흥분과 긴장을 가득 머금고 읽었는데,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잘 풀어주어 모임을 하는 동안에서야 마음껏 소설집에 빠져들 수 있었다.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재미나고 통렬하게, 무엇보다 생생하고 정확하게 다루면서도 기록되지 않고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게 좋았다. #문단_내_성폭력 이후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피드에서 흐르고 있던 목소리들, 촘촘하게 따져묻고 집요하게 추적하다가 어느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목소리들을 떠올리면서 읽어내야 했기에 한달음에 읽진 못했지만 신나고 즐겁게 읽었다는 이들이 내어놓은 이야기에 기대어 소설집 곳곳에 슬픔뿐만 아니라 활기와 유머를 품은 목소리도 함께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소설집이 뜻깊게 다가온 건 수록 소설 대부분이 '모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콜로키엄이나 포럼이나 세미나가 아닌, 갑자기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갖은 모임 안에 흘러넘치는 기묘한 에너지에 관한 문화기술지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지난주에 <모임이 쓰다>라는 폴더를 만들어 책으로 묶어봐야겠다는 아이디어 노트를 쓰기도 했다. 『이중 작가 초롱』을 뒤쫓는 방식이 아니고선 파악할 길이 없는 모임에 흐르는 정동을 기록한 소설로 다시금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임'을' 쓴다기보단 모임'이' 쓴다고 여긴다. 모임이 쓴 걸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고 있을 뿐 모임은 늘 뭔가를 쓰고 있다. 


2. 모임을 마치고 퇴근해 장림을 달렸다. 늦은 시간이라 조금 졸리긴 했지만 즐겁고 신나게 달렸다. 1km를 6분 30초대로 천천히 달린 덕인지 숨이 차지 않고 마지막까지 아픈 곳도 없었다. 달리는 주기를 이틀정도만 앞당겨서 조금 더 자주 달리며 천천히 거리를 늘려볼 참이다. 늦가을쯤엔 전처럼 10km를 달려보고 싶다. 어쩌면 5km야말로 가장 즐겁게 달릴 수 있는 정도라는 걸 알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토요일임에도 곳곳에 앉아 있던 대리기사가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아파트 구석에 핀 꽃무더기

오늘 달리기 soundtrack 마지막곡은 '당신의 모서리'(오소영 3집 <어디로 가나요>, 2020)

 

3. 오후 작업실.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움직이는 이야기> 프로그램 준비를 하고 틈틈이 어제 모임 후기도 메모했다. 화분에 물을 주고 그릇을 씻고 커피를 한 잔 내렸다. 몇 시간 빈둥거리며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군것질을 하지 않고 직접 만든 깨끗한 음식만 먹는 것에 작은 기쁨을 느낀다. 노트북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모자를 벗고 다녀볼까 싶었던 생각을 깨끗하게 지웠다. 

새순이 돋는다.
작업실 건물 5층 '계단 정원'. 가까이에 주변을 가꾸고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회복하는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께 부를래요?  (1) 2023.11.04
빈 채로 좋아하다  (0) 2023.10.23
질 자신_도둑러닝(5)  (0) 2023.05.04
4월 일기  (0) 2023.04.27
만큼과 까지(계속)  (0) 2023.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