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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함께 부를래요?

by 종업원 2023. 11. 4.

2023. 11. 3

 

작년 5월, 1인 출판사 <곳간>에서 첫 번째 책을 냈다. 언젠가는 출판사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그게 2022년일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언덕을 빠르게 내려가다가 속도를 이기지 못해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책을 낸 것 같다. 힘에 부쳤지만 열심히 홍보하고 여러 번의 북토크를 꾸리는 동안 꽤나 즐거웠다. 누군가가 설 수 있고, 그때문에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무대'를 꾸리는 일은 늘 즐겁다. 


곧 두 번째 책이 출간된다. 한 정부 기관지에 3년간 연재한 글뭉치를 넘겨받아 여러 번 읽고 손보고 매만지는 동안 첫 인상과 달리(!) 책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를 정리해 올 봄, 지역 출판지원금 사업에 내었고 선정이 되었다. 봄부터 여름 사이에 글 전체를 다시 읽으며 문장을 손보고 책 방향성을 잡았다. 디자인은 첫 번째 책부터 함께 해온 그린그림(박성진)과 작업했다. 편집 회의를 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장전동 작업실로 갔다. 가는 길이 늘 즐거웠고, 회의는 더 즐거웠다. 작업 진행을 위한 회의를 구실로 각자가 펼쳐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예전엔 디자인된 결과물을 통해 성진 씨에 대해 생각했는데, 대화를 나누면서 성진 씨라는 사람을 통해 작업물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책 작업도 성진 씨라는 사람이 지닌 '결'과 일상이 반영되어 있어 기쁘다.


언젠가는 '곳간'에서 그림책도 펴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고, 내게도 아이가 생긴다면 함께 읽을 그림책을 미리 읽어둬야겠다는 마음으로 틈나는대로 그림책을 펼쳐보고 있다. 그렇게 펼쳐본 그림책을 회의 때마다 챙겨가서 성진 씨와 지원 씨가 낳은 아이인 서인이에게 선물했다. 지난 번 회의에선 마침내 실물을 영접할 수 있었는데, "서인이가 좋아하는 <그레이엄의 빵심부름> 그림책 선물해준 삼촌이야."라고 소개해주어서 기뻤다. 어른 남자를 조금 무서워하고 나 또한 아이를 대하는 데 익숙치 않아서 두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만 봤지만... 담엔 손잡고 인사하자, 서인아!  


책을 펴낸다는 게 실감이 되질 않은 탓에 좀처럼 일이 진행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답답했다. 필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러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빈자리 때문인 듯하다. 그건 메울 수 없는 자리이기에 마음 속 소란이 잦아들기를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름부터 가만히 음악을 듣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부르는 목소리를 듣다보면 빈자리 또한 필요한 자리겠구나 싶을 때도 있다. 빈자리에서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고, 목소리에서도 빈자리를 느낄 수 있는 경우에 이끌리게 된다. 이케마 유코(池間由布子)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https://vimeo.com/278168857

영상 소개글 : 이케마 유코와 함께 2017년 8월,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교토 사와이케에서 진행한 필드 레코딩을 음반화 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다양한 생물들의 활동적인 시간을 담은 'Side: Day'. 밤이 깊어가는 분위기를 음악과 함께 들을 수 있는 'Side: Dusk'. 이 양면의 시간을 통해 공간의 확장과 변화를 소리의 저편에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업은 밴드캠프를 통해서 먼저 접했는데, 원테이크 방식으로 작업한 이 음반을 들으며 홀로 '이런 책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그때 그 순간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한 시도. 공기, 풀벌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가 만들어내는 노래 지도(cartography). 하룻동안 말하고, 하룻동안 쓴 글을 책 한 권에 담는 작업도 가능하지 않을까. 녹음을 해서 오디오북으로, 영상을 찍어서 클립으로 함께 놓아두면 근사한 무대가 되지 않을까.


https://aowf.bandcamp.com/album/at-one-with-field?from=search&search_item_id=1351913319&search_item_type=a&search_match_part=%3F&search_page_id=2936913716&search_page_no=1&search_rank=1&search_sig=1e7314aa6d9761ea35fe58ad8127fb49

 

野となり、山となる / At one with field., by 池間由布子 / Yuko Ikema

2 track album

aowf.bandcamp.com

이케마 유코를 더 들어보기 위해 검색하다가 알게 된 건 '테니스코츠(tenniscoats)'와도 각별한 사이인 것 같다는 것. 테니스코츠가 독립레이블은 운영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의 독립음반을 구매하고 또 들어볼 수 있는 사이트를 알게 되어서 그들이 운영하는 majikick 도 둘러보았다. 작은 존재가 규모를 키우는 방향만 있는 게 아니라 품은 뜻을 꾸준히 펼쳐가는 걸음이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우린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잠시 우정을 나눈 사이가 된 듯도 하다.  


이케마 유코와 테니스코츠가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아래 영상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테니스코츠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음악가 동료를 초대해 그들의 노래를 즉석에서 배우고 함께 불러보는 영상 꾸러미인데, 꾸밈없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잘 담겨 있어 자꾸만 들여다봤다. 사야(saya)는 노트를 펼쳐서 노랫말을 받아적고 우에노(ueno)는 코드 진행을 눈여겨보았다가 테니스코츠식으로 변주한다. 잘 갖춰진 무대인 것도 아니고 주변을 통제하지도 않은 채 노래를 통해 어깨동무한 모습이 좋아보였다. 모임 안에서도 가끔 알 수 없는 순간, 서로에게 기댄 채 웃음을 머금게 될 때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HJq41OU5fA&t=930s

Yuko Ikema 池間由布子 / Lemon chan レモンちゃん

몇 년 전에 테니스코츠 음악을 더 들어보기 위해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보게 된 공연 영상인데, 이 노래가 이케마 유코가 2015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しゅあろあろ>에 실린 것도 알게 되었다. 앨범 발매일을 비교하면 이케마 유코 노래를 테니스코츠가 리메이크한 것처럼 보이는데, 앨범 소개란을 보면 작사 작곡을 테니스코츠의 우에노가 했다고 나오니 원곡이 누구의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케마 유코가 부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케마 유코가 만든 노래 같고 테니스코츠의 사야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테니스코츠가 만든 노래 같다. 벗이란 이렇게 주고받으며 이어질 수 있는 거구나! (김밥레코즈에서 주문한 유코상의 CD 두 장이 와서 크레딧을 확인해보니 <光輪>은 Ueno Takashi가 만든 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aRXLYrR1W4

テニスコーツ feat. ICHI - 光輪 @ 森、道、市場 2016

그리고 이케마 유코와 테니스코츠가 함께 작업한 노래도 만나게 되었다. 이 노래는 이케마 유코 <明るい窓>(2016)에 담긴 노래다. 유튜브 영상이 오늘 공개되었다! 유코상이 '투나이~h' 할 때 발음이 너무 귀엽다. 

https://www.youtube.com/watch?v=RHziGMoYFcg

Hochzeitskapelle + Yuko Ikema + Tenniscoats: Time Tonight


노래를 들으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 비평이야말로 합창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무대를 꾸리는 일, 모임을 여는 일을 비평이라 여기며 해왔다. 책을 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텍스트의 안팎을 오가며, 누리며, 이것과 저것을, 이곳과 저곳을 누비는 건 잇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합창을 향해, 어울려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자리를 열어가는 걸음 위에 비평도 놓여 있다. 내내 그런 비평을 이어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빈자리를 잘 돌봐야 한다. 늘 구멍 나 있는 것 같은 내 마음 속 빈자리도, 다시 열릴 모임에 아직 오지 않은 벗이 채울 빈자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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