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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작업실 가는 길

by 작은 숲 2024. 12. 19.

2024. 12. 19

잠자리 자세가 잘못된 탓이라 여겼는데, 아닌 모양이다. 보름이 지나도록 목과 어깨 결림이 나아지질 않는다. 저녁이 되면 더 결리고 밤이 되면 그만 누워야할 정도로 불편하다. 꽤 오래 달리지 못했고, 작업실도 나가지 못했다. 마음이 바쁜 탓이다. 그럴수록 이상하리만치 일머리가 잡히질 않는다. 며칠, 아니 몇 주를 그냥 흘려보낸 듯하다. 오늘은 점심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간단히 도시락도 싸서 작업실로 간다. 지하철역까지 1km를 천천히 달렸다.

강의가 없는 날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지하철은 걷고, 뛰고, 읽는 일과 이어져 있지만 무엇보다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게라도 부대끼지 않으면 사람들과 잠시라도 섞일 일이 없을 것만 같다. 지난 주 그린그림과 디자인 회의하러 장전동으로 갈 때도 지하철을 탔는데, 그날은 팀 잉골드가 펴낸 ⟪조응⟫을 참으로 달게 읽으며 갔다. 오늘은 이오덕 선생님이 펴낸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를 읽었다. 신장림역은 텅텅 비었고 하단역에선 젊은이들이 조금 탄다. 자갈치에선 어르신들이 많이 타시기에 더 이상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없어 일찌감치 일어선다. 

아침에 차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이오덕과 박완서>라는 제목으로 살림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같은 이야기를 거듭 해왔기 때문이다. 이오덕이 거듭한 이야기와 박완서가 거듭한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이 두 이야기는 이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토요일에 열린 '이응모임' 때까지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어려울 듯하다. 지하철을 타고 작업실로 오는 동안엔 <불 꺼진 강의실>이라는 제목을 떠올리며 이번 학기,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불이 꺼져 있던 대학 강의실에 대해 짧게라도 적어야겠다 마음 먹었다. 그리고 한 장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반장을 했었는데, 그때 내 어머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끔 학교엘 오셨다. 내가 학급 임원이어서 별 수 없이 오신 게 아닐까 싶다. 여러 어머니들 틈에 끼어 잘 보이지 않았던 내 어머니를 기억한다. 처음 보는 블라우스를 입고 오셔서다. 파출부 일을 미루고 오신 걸까, 저 블라우스는 누구에게 빌린 걸까. 돈봉투를 마련해 담임에게 건네셨겠지. 하루 일삯보다 많은, 아니 일주일 일삯이 넘는, 피땀 흘려 번 돈을 흰 봉투에 넣어 그간 하지 않았던 일이기에 민망한 몸짓으로 앞 이빨이 크고 단단한 걸로 기억되는 4학년 3반 담임에게 바치셨겠지. 작업실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오덕 선생이 쓴 책을 읽으며 낯선 갈색 블라우스를 입고 교실 끄트머리에 서 계시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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