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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나날쓰기

by 작은 숲 2025. 1. 5.

2025. 1. 3

글쓰기를 미룬다.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룰 수 없을 때까지. 어제 써야 했던 글을 쓰지 못했기에 오늘 써야 하는 글도 쓰지 못한다. 쓰지 못한 글쓰기 굴레에 갇혀 숨가쁜 나날이 이어진다. 청소를 미룬다. 지저분한 자리를 피해다닐 순 있지만 그럴수록 더 눈에 밟힌다. 먼지가 쌓이고 얼룩이 진다. 너저분하고 어수선하다. 그 모든 살림에 등을 돌리고 앉아 글쓰기를 미룬다. 

작업실 가는 길에 이오덕 일기를 읽었다. 한길사에서 펴낸 ⟪이오덕 교육일기・2⟫(한길사, 1989)와 양철북에서 펴낸 ⟪이오덕 일기・4⟫(양철북, 2013)를 챙기고선 지하철에서 펴보았다. 4권은 1992~1998년 사이에 쓴 글을 추린 것인데, 지난달 이응모임에서 함께 읽은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최종규 편집, 삼인, 2005)와 겹쳐 읽어볼 수 있겠구나 싶어 챙겼다. ⟪이오덕 교육일기・2⟫를 보면 거의 매일 일기를 쓴 듯한데 ⟪이오덕 일기⟫는 날짜가 많이 뜬다. 매일 쓴 일기 모두를 꼭 책으로 묶지 않아도 되겠다 여겨 가려뽑은 탓이겠지. 그렇게 가려뽑아 묶은 ⟪이오덕 일기・4⟫엔 인터뷰와 잡지에 보낸 원고가 터무니 없이 바뀌고 빠진 이야기로 가득하다며 한숨을 내쉬고 화를 내는 글이 한가득이다. 여러모로 뜻깊은 책이지만 양철북에서 펴낸 이오덕 일기 선집을 이오덕 어른이 읽는다면 뭐라고 하실까.  

부스러기와 찌끼 같은 나날과 너저분하고 어수선한 살림. 이를 다 쳐내고 치워버리고나면 쓸 거리가 없다. 이오덕 어른이 쓴 글은 그야말로 되풀이로 가득하다. 불만과 잔소리가 한가득이고 엉망진창인 세상을 바라보며 한숨과 어처구니 없음 사이를 끝없이 오간다. 이를 하루도 걸르지 않고 되풀이 한다. 이오덕 어른이 일군 되풀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되풀이는 오래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바탕으로 한다. 말하자면 되풀이는 살림을 꾸리는 힘이다. 새로움을 찾아 낯선 곳을 향해 나가는 걸음이 아니라 터한 곳에서 배우고 가르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에 세상(둘레)을 가꾸고 돌보는 일과 이어진다. 살림은 그야말로 끝없는 되풀이다. 이 끝없는 되풀이 안에서 사랑이 깃들고 영글기에 사람이 살 수 있다. 그러고보니 되풀이 한 것만 베풀 수 있구나 싶다.

글쓰기와 청소, 쓰기와 쓸기. 되풀이 하지 못한 이 둘이 등을 맞댄다. 쓰기가 나아가려면,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쓸기가 되어야겠구나 싶다. 치워야 채울 수 있고 비워야 찰테니까. 나날이 쓸고, 나날이 치우고, 나날이 채우기. 그 이야기를 쓰면 되겠구나. 그래서 일기 대신 ‘나날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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