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5
김비 작가님을 만나러 차를 몰고 양산으로 간다. 이런 길을 거쳐서 부산으로 오겠구나를 가늠하며 꽤나 ‘늦은’ 양산행을 들여다본다. 양산 모퉁이 두세 곳을 옮겨다니며 새로 펴낸 책 이야기를 나눴다. 짧지만 긴 이야기. 아쉽고 서운했던 마음을 털어내고 즐겁고 기쁘게 어울릴 수 있는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해가 지는 늦은 오후 부산으로 돌아오며 김비 작가님이 이 길을 지나 부산으로 오는구나를 헤아린다.
지난해 끝자락부터 올해 들머리까지 책 두 권을 펴내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 특히 눈이 침침해져서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고, 어깨걸림도 하루종일 이어진다. 2월 중순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 4박 5일 일정으로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는데, 걷는 동안 새끼 발가락 끝이 내내 아렸다. 그 아픔이 몸을 살피고 돌보라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교토에서 달릴 참으로 주섬주섬 챙겨갔는데, 발표 준비와 발가락 통증 때문에 엄두도 내질 못했다. 마음 한켠에 쌓아둔 짐을 한쪽으로 내려놓은 날이니 밤 10시가 넘어 달릴 채비를 하고 나선다.
보름만에 달린다. 첫 1km는 가볍게 달리며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 가만히 들여다본다. 500km 가까이 뛰어 밑창 한쪽이 떨어져나간 운동화가 여느 때보다 가볍다. 통통통 뛰는 발걸음이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몸 여기저기를 가볍게 토닥이는 듯하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보니 늘 어깨가 뭉치고 목이 뻐근하다. 그런 까닭에 달리기 시작할 때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말랑말랑하게 풀어준다. 몸통을 바로 세우되 어깨 위로 올라간 몸 중심을 아랫배까지 내려오게 한다. 무릎과 발목은 몸을 지탱하는 게 아니라 길 위에서 몸이 잘 흐르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자면 힘이 들어가면 안 되는데, 몸에 힘을 빼려면 몸통(core)과 종아리 근육이 받쳐주어야 한다. 무릎엔 언제나 옅은 통증이 있다. 이 통증이 더 깊어지지 않는지 살피며 달려야 한다. 2km까지 몸 상태를 살피는 데 집중하다보면 3km부턴 두 다리가 서서히 바퀴로 바뀌는데, 어느 순간 힘들이지 않고도 몸이 저절로 ‘굴러’ 간다.
대개 10km를 달리는 동안 1초도 쉬지 않는다. 달리기를 마칠 때까지 땀이 흐르지 않게 하는 일도 내겐 중요한데,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코로만 숨쉬며 느긋하게 달리는 것이고, 둘째는 멈추지 않고 달리는 데 있다. 달려서 땀이 흐른다기보단 달리다가 멈추기에 땀이 흐른다. 아직은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데, 달리다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는 때가 있다. 몇 달 앞서 달리기 살림글을 쓰면서 그 까닭이 ‘딴생각’을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딴생각과 함께 낱말 하나도 꼭 침이 고이듯 입안에 맺힌다. 딴생각과 낱말 하나가 왼발과 오른발처럼 사이좋게 맞장구치며 구른다. 달리기는 나와 길이 어울려 추는 근사한 춤이다. 늦은 밤, 마을 귀퉁이에 조용히 울려퍼지는 통통통, 타닥타닥하는 소리는 몸과 길이 즐겁게 마주치는 손뼉이다.
어제 넉넉하게 잠을 잔 덕분인지 즐겁게 달리는 동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달리고 나니 여느 때와 다르게 오른쪽 어깻죽지가 욱씬했는데, 바로 여기가 매만지고 돌봐야할 곳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하다. 이 몸으로 달렸다. 아프고 결리는 몸으로. 달리는 동안 여지없이 기쁜 몸으로 변하는 내 몸으로 마을 곳곳을 누볐다. 오늘은 어느 때보다 별이 총총 빛났다. 날이 차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바닷가엔 여느 날과 다르게 백로가 한 마리도 없었지만 드문드문 홀로 서 있던 그 자리를 눈길로 헤아리며 달렸다. 두 팔을 펴고 날개짓 하듯 골골샅샅을 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