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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짓는 동안 흐르는 콧노래

by 작은 숲 2025. 1. 28.

2025. 1. 28

‘밥 먹을 시간이 없다’는 말을 몸으로 겪는 나날이다. 문턱 앞에서 풀이 죽거나 머뭇거리는 버릇 탓도 있겠지만 여러 일을 해내야 하는 때여서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첫끼를 챙길 때가 잦다. 밀린 일이 있어도 끼니만큼은 느긋하게 챙겨왔는데, 요즘은 끼니를 건너 뛰게 된다. 늦은 끼니를 챙기며 이 바쁨이 무얼 말하는지 가만히 돌아보았다.

지난 일요일엔 곳간 새책 디자인 이야기를 나누려 장전동 그린그림 작업실에 갔다. 내가 사는 곳이 다대포 근처이니 지하철 1호선으로 놓고 보면 끝에서 끝이다. 그런 까닭에 예전엔 운전을 해서 가곤 했는데, 지금은 지하철을 탄다. 서부산에서 동부산까지 가는 동안 정차하는 역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모습이 제각각이라 드문드문 그걸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 재밌다. 무엇보다 1시간 넘는 동안 책을 읽는 재미가 크고 작업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 길이기에 내내 즐겁다. 

이날은 세 시간 가까이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새책 판형, 표지 종이, 내지 종이 질감, 글꼴, 표지 디자인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도 하나하나 꺼내서 펼쳐놓는다. 성진 씨가 차분하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여러모로 느끼고 배운다. 처음엔 서두르는 마음이 앞섰지만 이제는 나도 책 만드는 자리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하나씩 내어놓게 된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즐거운 까닭을 뚜렷이 알겠다.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나온 ≪살림문학≫이 여러모로 뜻깊다 여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홀로 애쓴 게 아니라 어울려서 함께 꾸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교정/교열을 계선이 대표님이 맡아주셨는데, 꼼꼼하게 살피고 손봐주어서 아등바등하지 않고 성큼 큰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난 가을 ‘진주 쓰깅’ 웹포스터를 부탁하며 나누었던 이야기가 ≪살림문학≫ 표지와 내지 디자인까지 흐르고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그린그림 작업실에 들어서기까지 오르는 계단이 좋고 이야기를 끝내고 장전역 지하철까지 걸어가는 길은 늘 든든하다. 

일요일 새책 디자인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너무 허기져서 충동적으로 치킨을 주문하고 찾으러 갔다. 장림 주민센터 옆에 자리한 치킨집이었는데, 조금 일찍 도착한 까닭에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가게 안을 슬쩍 둘러보았다. 주방엔 아주머니 혼자 일하시고 아저씬 무뚝뚝한 표정으로 배달 나갈 음식을 챙긴다. 튀김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깨끗해서 조금 놀랐는데, 어디선가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적어도 두 가지 요리를 하는 것처럼 바쁜 몸짓으로 움직이는 아주머니가 부르는 거였다. 이틀 동안 그 콧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래였기에 시원한 바람 같기도 했고 아름드리 나무가 내어주는 그늘 같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몇 번이고 책장으로 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꺼내 놓고 여러 생각을 들려줄 때도 콧노래가 흘렀겠구나 싶다. 내가 일을 할 때도, 동료에게 이렇게 해보자고 이야기를 건넬 때도 그런 콧노래가 흐르고 있을까.

장전동 그린그림 작업실에 펼쳐놓은 책들. 처음엔 두세 권만 놓였는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책상을 가득 채웠다. 202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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