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17
여기서 저기까지 달려서 다다르기. 늘 장림 주변만을, 매번 큰맘 먹고 달리다가 언제 어디서라도 달릴 수 있을 때 달려야겠다 싶어 여기저길 달려보니 상쾌하고 좋았다. 러닝화를 신지 않고도, 코트를 입고도 몇 킬로를 달려서 오고 가는 맛이 있었다. 그렇게 작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처럼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여했다. 세희가 북돋지 않았다면 또 미루어졌을 수도 있지만 3월 내내 밀린 원고를 쓰다가 겨우 마감하고 나들이 나서는 마음으로 기쁘게 달렸다.
시작부터 끝까지 세희랑 이야기나누며 걷고 뛰고 오르고 내려가고 쉬고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다시 떠올려보니 거의 울고 싶어질 정도로 온몸, 온맘으로 누렸구나 싶다. 2019년즈음에 ‘문학의 곳간’ 친구들이랑 대마도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었는데, 그때 함께 갔던 운호 씨랑 10km를 나란히 달렸다. 하프 마라톤은 처음이라고 해서 돕는 마음으로 이야기 나누며 달렸는데, 10km 지나서는 내 갈 길을 갔다. 함께 달렸던 10km가 오랫동안 생각이 났고 참으로 좋았다 여겼지만 그건 우연히 발밑에 도착한 열매나 선물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여러 장비와 많은 운동을 섭렵하며 익힌 지혜를 바탕으로 세희는 마치 지휘자처럼 속도를 조절했고 7시간 가까이 함께 하는 동안 우린 한 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느껴본 즐거움 안에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걸으며 대화하기인데, 이날을 다시 떠올려보니 몸서리치게 행복해서 단박에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10일동안 틈날 때마다 이날을 생각한다. 거기에 내가 있고 세희가 있지만 당분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 집으로 돌아와 떠올려보니 온몸으로, 온맘으로 이야기했던 그 시간 안에 나라는 사람이 뚜렷하게 찍혀 있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징그러워라. 아, 내가 가까스로 이런 사람이구나. 천만다행이다. 세희는 이런 나를 반겨주었구나, 받아주었구나, 좋아해주었구나, 끝없이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또 이야기를 건네주었구나.
우린 사귄지 오래된 사이지만 세희가 영화촬영을 하고자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간 이후 아주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고 서로가 일구는 살림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진 못한다. 가난하고 덤벙대며 무책임한 20대를 함께 보냈던 밑천으로, 용케 헤어지지 않고(24년동안 내가 결별 선언을 두 번 정도 했었다!) 지금껏 사귀고 있지만 나는 세희가 어떤 사람인지 그속까진 잘 알지 못한다. 세희가 다른 이에 비해 내게만큼은 마음껏 이야기를 하고 나 또한 세희에겐 마음껏 이야기를 하는 사이라는 정도. 사라지지 않고 용케 살아남아 제주도 오름을 원없이 걷고 뛰며 이야기 나누었구나 싶다.
오래전에 본 구스 반 산트가 만든 영화 <게리 gerry>(2002)가 떠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걸으며(하이킹)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다. 온몸과 온맘으로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달콤하고 위험한 일인지 말하고 있는 영화라 기억한다. 아마도 꽤나 긴 글이 될 거 같은 살림글을 펼치기 전에 지난 사진을 들여다보며 몇 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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