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2
늘 같은 곳을 달려도 달리는 몸과 마음이 다르고, 부는 바람결과 풍기는 냄새가 다르고, 별빛과 밤구름도 같은 적 없으니 오늘도 다른 길이다. 가볍게 입고 바깥에 나설 때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 순간은 언제나 좋다. 발을 내딛을 때 넉넉하게 받아주는 땅과 가볍게 튕기며 저절로 나아가는 발바닥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맞춰서 손뼉을 치는 듯해 발구르기도 신이 난다. 두어달 멈췄던 세미나를 다시 연 날, 발제는 끝냈고 봄밤에 부는 바람은 선선하고 냉장고엔 어제 만들어둔 음식도 남았으니 반병쯤 남은 와인을 곁들일 수 있다. 세미나를 마치고 한결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달리러 나섰다. 오늘밤 나는 누가 뭐래도 넉넉한 사람이다.
다대포 바닷가를 곁에 두고 달리다가 문득 눈을 감고 달려보고 싶었다. 폭이 넓지 않은 길이어서 잠깐 감았다가 빨리 떠야 했지만 세 걸음, 다섯 걸음이 곧 여덟 걸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열 세 걸음, 마침내 스무 걸음까지. 다섯 걸음부턴 바닷가쪽으로 발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그래도 자꾸만 눈을 감고 달리고 싶어 내 손을 잡고 앞을 열어주는 어떤 이가 있다 여기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발을 길게 뻗었다가 좁혔다가, 아이처럼 장난치듯 달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걱정되면서도 눈을 감은 채로 계속 달리고 싶다는 마음도 같이 솟아난다.
왜 갑자기 눈을 감고 달려보고 싶었을까? 나는 그 까닭을 금새 알 수 있었는데, 실은 언제나 눈을 감고 달리는 것처럼 붕 뜬 채 동네를 누볐기 때문이다. 달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날개처럼 펴고 달리게 될 때가 있고, 귀에 꽂은 이어폰으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다만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만 가득할 때도 있고, 5km를 지나다보면 어느새 몸이 두둥실 떠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달리기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느끼는 일인데 그건 몸맘을 다 내어놓는 일과 이어진다. 그게 눈을 감는 일과 맞닿는다는 걸 어슴프레 알아차린다. 노랫말이 정겹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읖는다면 눈을 감는 정도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느낌이겠지.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되풀이 하는 동안 아찔함과 어지러움 사이를 오간다. 눈을 감고 열 걸음을 내딛으면서 알아차렸다. 눈을 감고 더 가려 한다면 더 천천히 달리면 되구나, 걸음 폭을 줄이면 되구나. 이야기를 나누며 달릴 수 있는 달리기 벗을 마음 속 깊이 바라왔는데, 그이가 손을 잡고 한걸음 앞서 달리며 눈을 감고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게 도와주는 벗이기도 하겠구나. 걸으며 이야기 하기야말로 가장 큰 즐거움이라 여겨온 까닭도 이제 더 뚜렷하게 알 것 같다. 이야기를 내어놓는 동안, 혹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은 곁에 기대어 가만히 눈을 감고 걷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내 반짝이는 게 아니라 잠깐 깜빡이는 것들은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겠구나 싶다. 눈을 감아야만 만날 수 있는 이가 있다. 모든 깜빡임 곁엔 함께 걷는 발걸음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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