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5~6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아버지! 그렇게 팔을 뻗어서 난간을 잡으면 위험해요.
-뭐가, 왜 위험하냐.
-늘 이렇게 난간을 잡고 오르셨어요?
-...
-팔을 뻗어서 난간을 잡고 당기면서 계단을 오르면,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잖아요. 혹여라도 난간을 못 잡거나 미끄러지면 뒤로 넘어집니다. 팔에 힘이 없어서 난간을 놓칠 수도 있구요. 그럼 크게 다쳐요.
-...
-이렇게 해보세요. 몸을 앞으로 조금 기울여서 난간을 지팡이를 짚듯이 잡으셔야 해요. 그럼 미끄러지거나 팔 힘이 없어서 난간을 놓친다고 해도 크게 다치진 않습니다.
-그렇네?
-그리고 이렇게 계단을 오르셔야지 몸의 힘을 고르게 쓸 수 있어요. 팔을 뻗어서 난간을 잡아 당기면서 오르면 팔힘만 쓰게 되잖아요.
-...
-굽은 왼쪽도 자주 쓰도록 하세요. 몸이 그렇게 되신지 20년이 넘었는데, 아버지 몸에 맞는 동작을 아직 익히시지 못한 거 같아요. 예전 몸이라 여기며 너무 급하게 움직이시고... 말을 듣지 않는 왼쪽을 너무 신경 쓰시니까 그쪽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몸이 더 굳어지는 것도 같구요.
-그래, 니 말이 맞아.
삼척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내년에도 갈 때는 기차로, 올 때는 버스를 타자.
-네, 그렇게 해요. 아버지.
*기차를 타고 올라갈 땐 내내 터널이 너무 많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버스를 타고 내려올 때 울진까지 하나하나 짚으며 동네 이름을 알려주셨다. 날은 흐렸지만 버스 창으로 지나는 마을을 바라보는 아버지 눈빛이 아이처럼 밝아보였다.
추석 아침, 챙겨간 녹차를 마신 뒤에 큰어머니, 아버지, 작은 어머니에게도 한 잔씩 내려드렸다
-대성아, 그 차 어떻게 만드는 거야?
-아, 녹차잎을 따뜻한 물에 우려서 만든 거에요. 마시기 좋으셨어요?
-한 잔 마시니까 속이 편하고 좋더라.
-아, 그럼 제가 부산 가서 녹차잎이랑 차 내리는 다기 챙겨드릴게요.
-그래, 참 좋더라.
* 중앙동 '좋은차'에서 아직 다기를 사질 못했다. 우롱차를 준비할까, 녹차를 준비할까도 아직 결정을 못했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아버지가 나란히 앉아 몸무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몸무게가 77kg인데...
-77kg이라구요? 왜 그렇게 살이 찌셨어요!
-조금 빠진 건데?
-예전에 72kg 아니셨어요?
-한창 때는 그랬지.
-아버지는 일 마치고 자주 술을 드셔서 살이 찐 거에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소주에도 당분이 많아요. 안주까지 곁들이면 살이 찔 수밖에 없어요.
-소주를 마셔도 살이 찐다고?
-네!
1호선을 타고 본가로 오는 길, 지하철역 안에서
-아버지, 저 앞 어르신이 신은 구두 어때요?
-... 괜찮네.
-아버지도 저런 구도 신을 수 있겠어요?
-신을 수 있지.
-저 구두가 가죽으로 되어 있어서 신기 편하실 거에요. 가죽이라 말랑말랑 할 거거든요.
-...
-아버지도 저런 구두 신으시면 좋겠어요. 옷두 나이에 맞게 중후한 느낌이 나게 챙겨 입으시구요. 저 구두 신으면 아무 옷이나 못 입으실 걸요? 그렇게 갖춰 입으시면 시장에서 소주 안 마시고 싶어질 걸요?
-그래.
* 오늘 본가엘 들러 저녁을 먹었는데, 어머니가 갑자가 '너, 아버지 한테 구두 사준다고 이야기 했냐?'고 하시길래, 그렇다고 하니 아버지 지금 그 구두 기다리고 있다고. 여러번 얘길 하셨다고 한다. 어버지 곧 구두 사러 같이 가시지요... 말해놓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 온몸에 털이 다 빠져버려 명절에 친지를 뵙지 못한 게 4년. 아버지가 너무 적적해하셔서 작년에 큰 맘 먹고 거의 5년만에 삼척엘 다녀왔다. 매형 차를 빌려서 운전하며 삼척을 오갔던 길이 아버지와 짧은 여행을 하는 것처럼 여겨졌는데,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올해 6월부터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해서 작년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질 모시고 삼척에 다녀왔다. 삼척을 오가며 아버지랑 두런두런 이야길 나눴는데, 부산으로 오는 길에 드문드문 나누었던 이야기가 참 좋다 여겨져서 도착하자마자 적어둬야겠다 싶었는데, 그만 놓쳐버렸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부전역에서 샀던 명란김밥이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두 번 했던 것 외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