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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김반 일리히 일기(1) 콜라와 나쁜 생각

by 종업원 2012. 2. 25.




콜라를 마시겠다 결심한 것은 아마도 나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올라오면서 나는 별안간 아이스크림을 생각하게 되었다. 밥을 먹을 땐 물을 마시거나 국물을 잘 마시시 않는 나이지만 오늘은 식당에 앉자마자 물 한 잔을 비웠고 식사를 마치고 입안을 청소하기 위해 머금은 한모금은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양이었다. 목이 탔다. 그래서 나는 나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아니 나쁜 마음을 가졌던 탓에 목이 탔을 수도 있겠다. 아이스크림을 떠올렸고, 무수히 많은 아이스크림에 질려 더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콜라를 마시기로 했다. 진작에 그 생각을 했으면 집 앞 우리마트에서 콜라를 살 수 있었을 것을, 온통 편의점으로 둘러 싸인 곳에서 나는 콜라를 골라 마시겠다는 나쁜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편의점의 모든 상품은 질소로 가득찬 비닐 속에 감춰져 있거나 몇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단단한 통조림 속에숨겨져 있다. 모든 제품은 자체 가격표가 붙여져 있다. 그것은 고객 배려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의 과자 및 음료류들이 '정가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며 슈퍼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음을 공시된 가격표(공식적인 방식으로)를 통해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콜라는 1100원. 그 아래의 칠성사이다는 1000원. 나는 잠깐 갈등하다가 이왕에 나쁜 마음을 먹었으니 콜라를 사기로 한다. 계산대로 가기전에 동전 지갑에서 동전을 찾는다. 다행히 오백원 짜리 두 개와 백원 짜리 하나가 있다. 아주 짧은 순간 흡족해졌다. 편의점을 나오면서 아이스크림의 가격을 흘깃보니 1500원이다. 이제 어디서도 아이스크림을 사먹기가 힘들다.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고르기가 힘들다. 고르기가 힘들다보니 아이스크림 먹는 재미가 반으로 줄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콜라를 마셨다. 목안을 톡 쏘는 게 나쁜 생각 몇 가지를 더 해도 좋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위는 점점 어두워져 갔고 학교 건물 입구에서 xx교수를 만났다. 두꺼운 패딩의 자크를 올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것만큼 반가운 척 인사를 하고 바닥에 남은 콜라만큼의 대화를 했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다시 서로에게 인사를 했는데, xx교수는 80도 정도로 허리를 굽혀 내게 인사를 했다. 불현듯 다리를 떠는 사람은 죄가 있어서 그렇다는 내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콜라를 마시며 올라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숨이 차지 않았다. 나는 나쁜 사람들이 그러하듯 현금 지급기 앞으로 가서 내 통장의 잔액을 확인했다. 잔액을 확인하고 다른 계좌의 잔액들과 합산해보았다. ATM 기기에 달려 있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은 1시간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에 콜라 자판기가 보였다. 콜라콜라의 가격은 70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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