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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삶에 이르는 병

by 작은_숲 2026. 6. 12.

2026. 6. 11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감으면서 한 사람을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 보내는 시를 써야겠다. 한량이나 불량배처럼 어슬렁거리지 못하고 이 커다란 도시 이곳저곳을 터벅이며 깃들 곳을 찾아 느리게 움직이는 탓에 웅크린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서둘러 죽지 않기를, 끝내 늙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고 싶다. 첫 마디를 뭐라 건네야 할까, 추운 겨울날 외투도 없이 모임에 왔던 그날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소도시에 문화예술 활력을 불어넣고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글을 통해 상상해보던 곳에서 시작해야 할까 서성이다 '삶에 이르는 병'이란 제목을 떠올렸다. 당신이 병에 걸렸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 병은 평생 당신과 함께 할 거다. 병명은 삶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살아라 生きる!'(<원령공주>)라고 명령하고 싶진 않다. 손쉬운 위로를 하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다. 위로가 아닌 당신을 통해 선언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이 시를 당신이 반겨줄까?

새로 펼친 글쓰기 모임에서 '음독 자살'을 시도했던 때를 돌아본 글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았던 때를 지나 그 병이 '힘을 다해버려' 마침내 약이 듣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만 나는 '힘을 다해버렸다'는 말이 무얼 가리키는지를 생각했다. 약이 듣지 않았다는 건 어떻게든 계속 싸우고 있었다는 뜻이겠구나. 누구도, 무엇도 저 힘을 다스리지도 달래지도 못했겠구나. 그만큼 길길이 날뛰며 생생하게 발광했다는 뜻이겠구나. 그 힘이 깎이고 잘려서 누그러졌다는 것 또한 무척 슬픈 일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죽을 정도로 발버둥쳤던 그 힘, 삶을 옭죄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 발광하듯 몸부림치던 때. 그 사람은 살았고 그 힘은 죽었다. 그 사람이 살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옆에 죽은 힘을 애도하는 자리도 필요하겠다 싶다.  

'힘을 다해버렸다'는 말을 되뇐다. 오늘도 힘에 부친다. 며칠 동안 틈틈이 ⟪미지의 세계⟫를 그렸던 이자혜 작가 인터뷰를 듣고 있는데, 오늘 모임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이어서 듣다가 책장에 꽂아둔 ⟪미지의 세계⟫ 시리즈를 다시 읽고 뭐라도 쓰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을 갖자마자 힘에 부친다란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것저것 찔러보고 맛보는 동안 긴 세월이 흘렀고 그렇게 힘을 다해버렸구나라고 중얼거렸다. 늘 몸을 기울이고 살았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서. 몸을 기울이는 사람을 보면 '침을 삼키곤 한다.'(김일두, <괜찮은 사람> 노랫말에서 빌려옴) 마침내 만났군요. 기울어진 사람을 마주보고 내어놓은 말과 글은 기댈 곳이라기보단 막힌 것처럼 보이는 벽 사이에 비치는 작은 틈을 가리킨 것에 가깝다고 해도 될까? 기울였던 몸을 곧추 세우고 이어서 비스듬히 기대어 본다면 다른 게 보일까? 

'더이상 모임은 못하겠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난 달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떠올린다.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했구나. 10년전에도. 모임 뒷이야기글을 쓰려고 일주일동안 이리저리 궁리를 해봤는데, 어쩐지 잘 써지지 않는다. '회복이라는 모험'과 같은 구절만 적어두었다. 그건 '회복이라는 위험'을 가리키는 말이다. 모험은 위험을 향해 기울어 있다. 회복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지난 달에도,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10년전에도 더이상은 못하겠단 생각을 되풀이한 까닭은 몸을 기울이는 게 버티기가 아닌 모험이자 탐험이기 때문이겠구나싶다. 그러니 '더이상 모임은 못하겠다'는 건 꼭 지쳐서만은  아닌 셈이다. '힘을 다했다'는 말을 땔감처럼 태워서 오늘 모임 뒷이야기글을 쓴다.
 

    

<회복하는 글쓰기>(2026_연제도서관) 4회 뒷이야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