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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살림에 깃드는 작은 날개짓

by 작은 숲 2025. 1. 19.

2025. 1. 19

 

연산동 '카프카의 밤'에서 잇는 <이응모임> 아홉번째 걸음을 함께 했다.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겠다 싶었지만 오고 가는 3시간 동안 손보는 책 원고를 들여다보면 되겠구나 싶어 나섰다. 운전을 해서 가면 조금 더 일찍 닿을 수 있다해도 가만 생각해보면 내내 차에 메인다는 뜻이니 두손 두발이 차에 묶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40분 일찍 나서기로 한다. 가끔씩 작은 생각이 깃들며 저절로 트이는 살림 자리를 만날 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응모임>에 가는 길이어서일 테지. 새벽부터 모임 자리를 펴려 고흥을 나선 이와 밤늦도록 불밝히는 책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나누는 자리로 가는 걸음이니 살림이 깃들 수밖에.

⟪이오덕 일기⟫를 곁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 <이응모임> 아홉 걸음.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 이 자리를 마음껏 누렸다. 오늘 함께 쓴 시 글감은 도시락이었는데, 나는 찬밥으로 고쳐서 써보았다. 조금 묵히며 찬찬히 떠올려보기로 하고 지난달에 썼던 작은 시를 옮겨둔다. 


오늘 내어놓는 살림
2024. 12. 21_작은숲

오르막길을 즐겁게 오르기
손수 밥을 지어 맛있게 먹기
느긋하게 오래 달리며 누리기
작은 모임을 오래 잇기
살림을 바탕으로 글쓰기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이야기를 내어놓기
잘 받고 잘 건네기
마음껏 웃고 마음껏 울기
가엾게 여기고 아끼며 곱게 여미기


 <이응모임> 여덟 걸음에 읽었던 ⟪내가 무슨 선생노릇을 했다고⟫는 교단에서 쫓겨난 뒤에 쓴 글뭉치를 이오덕 어른 원고를 정리하던 최종규 선생님이 2005년 3월 22일에 발견해 펴낸 책이다. 여기서 이오덕 어른은 아이들이 지닌 마음 바탕을 정직함, 계산하지 않음, 동정심으로 바라본다. 이는 어른들이 잃어버린 본바탕이기에 "아이들의 마음과 세계를 믿는 것"(57쪽)이 지금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가장 먼저 풀 문제라며 어린이 마음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책이나 지식으로 얻은 게 아니라 40여 년 동안 교직 생활에서 살펴보고 겪으면서 얻은 결론임을 밝힌다. 서재 한 켠에 먼지를 잔뜩 뒤짚어 쓴 채 묻혀 있던 이 글묶음이 말하고자 한 바가 여기에 있다 여긴다. 아마 그런 까닭으로 모임을 이끄는 최종규 선생님이 이날엔 <내가 물려 주고싶은 일>을 글감으로 내어놓았지 싶다. 

물려주고 싶은 일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며 오늘 내어놓고 싶은 살림을 하나 둘 적어보았는데, '마음껏 웃고 마음껏 울기'는 좀처럼 하지 못하는 일인 터라 바라는 마음을 슬쩍 적어본 것이다. 그날 적었던 시를 가만히 읽다가 쪽지 뒤에 두 줄을 더 채웠다. 


코로만 숨쉬기
허리숙여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기


살림 차림을 하루에 한줄씩 채우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만 훗날 물려줄 수 있는 게 없다면 오늘 잘 내어놓아야겠다 싶다. 그걸 잘 하기 위해서라도 내 살림에 깃드는 날개짓을, 그러니까 작은새가 잠깐 내려앉았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부지런히 적바림 해둬야겠구나. 나날쓰기가 날개짓을 하는 몸짓과 닮아 있다는 것도 조용히 알아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