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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 일리히3

김반 일리히 일기(3) 거지가 없다 보행자를 우선 시 하는 ‘X자 형 횡단보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별스럽게 일찍 개학한 한 대학에 강의를 하러 가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 보행자(달리 말해 걸을 수 있고 갈 곳이 있는 이)가 편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육교[다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에 관해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걸을 수 없고 갈 곳이 없는 이가 모두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육교[다리]’를 건너야 헸는데, 육교를 오른다는 것은[‘너머’로 건너간다는 것은] 그 위에서 걷지 못하는, 갈 곳이 없는 이들을 지나쳐[만나]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사실. 육교가 사라졌다. ‘거지’가 사라졌다. ‘거지’라는 단어를 서스름 없이 쓰는 나를 비난하겠지만 이제 ‘거.. 2012. 3. 5.
김반 일리히 일기(2) 반찬 생각 모처럼의 휴일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 건 단 하나의 문장도 읽거나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두칼국수를 먹기 위해 에 갔다. 한동안 손님이 없었는지 늘 김이 서려있는 창문이 깨끗했다. 0.5평도 안 되는 공간에 시어머니(추정)와 며느리가 (소리로 추정)을 보고 있었다. 후덕한 인상의 여주인(며느리)은 냉큼 일어나 국수를 삶는다. 그러나 하루의 첫번째 끼니인 내 앞에 도착한 칼국수는 완전히 익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저장해두었던 에 실렸던 가라타니 고진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칼국수가 익기를 기다렸다. 인터뷰는 싱거웠고, 칼국수는 좀처럼 익지 않았다. 단무지를 두 개째 먹다가 반찬이 없어지면 세계는 지금보다 조금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베트남이었는지 홍콩이었는지 중국이었는지 정확하게 기.. 2012. 2. 26.
김반 일리히 일기(1) 콜라와 나쁜 생각 콜라를 마시겠다 결심한 것은 아마도 나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올라오면서 나는 별안간 아이스크림을 생각하게 되었다. 밥을 먹을 땐 물을 마시거나 국물을 잘 마시시 않는 나이지만 오늘은 식당에 앉자마자 물 한 잔을 비웠고 식사를 마치고 입안을 청소하기 위해 머금은 한모금은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양이었다. 목이 탔다. 그래서 나는 나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아니 나쁜 마음을 가졌던 탓에 목이 탔을 수도 있겠다. 아이스크림을 떠올렸고, 무수히 많은 아이스크림에 질려 더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콜라를 마시기로 했다. 진작에 그 생각을 했으면 집 앞 우리마트에서 콜라를 살 수 있었을 것을, 온통 편의점으로 둘러 싸인 곳에서 나는 콜라를 골라 마시겠다는 나쁜 .. 2012.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