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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편에 서서2

<생활-글-쓰기 모임> 4회 2015. 8. 4 design_yang 누군가의 편에 서서(2) 글쓰기와 발명하기‘쓰기’라는 행위를 앞에 두고 자꾸만 ‘살기’ 주위를 맴돌게 되는 것은 필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알 수 없음에도 무언가를 써야만 한다는 생각을 그러잡고 있는 일. 이 무용한 애씀 속에 ‘쓰기’의 이치가 있다. 이치는 기어코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끝없이 채우고 보살피는 정성을 다한 노동을 통해서만 잠깐 품을 수 있는 ‘뜻’이자 ‘희망’일 따름이다. 글쓰기란 내 것일 수 없는 텃밭 앞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내 것일 수만은 없는 커다란 짐을 기꺼이 지고 길을 떠나는 일이다. 글쓰기를 일러 고독의 시간 속에 머무르는 일이라고들 하.. 2015. 8. 7.
누군가의 편에 서서(1) 2015. 6. 23 익명의 액자공들 누군가의 글을 읽는 시간, 독자가 되는 시간. 나는 알고 있다. 독자의 시간이란 액자를 만드는 시간임을. ‘읽기’란 작은 액자를 만들어 그 글을 어딘가에 걸어두는 일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액자공’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액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고도 무언가를 감싸고 들어 올리는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 한 명의 작가가, 하나의 작품이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들이 그 작가와 작품을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어 부를 수 없는 액자공을 부를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인가. 그 익명의 이름들이 작가와 작품의 이름 안에 감춰져 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의.. 2015.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