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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생활-글-쓰기 모임> 4회

by 종업원 2015. 8. 7.

2015.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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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편에 서서(2)



글쓰기와 발명하기

‘쓰기’라는 행위를 앞에 두고 자꾸만 ‘살기’ 주위를 맴돌게 되는 것은 필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알 수 없음에도 무언가를 써야만 한다는 생각을 그러잡고 있는 일. 이 무용한 애씀 속에 ‘쓰기’의 이치가 있다. 이치는 기어코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끝없이 채우고 보살피는 정성을 다한 노동을 통해서만 잠깐 품을 수 있는 ‘뜻’이자 ‘희망’일 따름이다. 글쓰기란 내 것일 수 없는 텃밭 앞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내 것일 수만은 없는 커다란 짐을 기꺼이 지고 길을 떠나는 일이다. 글쓰기를 일러 고독의 시간 속에 머무르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쓰고 있는 순간만큼은 결코 혼자 일 수 없다. 지금 손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곁에 누군가가 없다고 해도 그 누군가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없음, 바로 그 부재로부터 닿을 수 없는 것을 닿게 하는 ‘다른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을 만지는 ‘다른 손길’이 움튼다. 그러니 ‘글쓰기’는 ‘발명하기’와 다르지 않다. 무엇을, 왜 발명하는가. 누군가에 닿아 감응하여 나누고 가꾸기 위해서다.  



‘방향’을 발명하는 일

그런데 누군가란 도대체 누구인가? 누군가의 요체는 누군가가 누구냐에 있지 않다. 누군가가 존재하는 그 쪽, 그 방향, 그 편이 중요하다. 그것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임에도 기꺼이 향하는 일. 그 힘씀과 애씀이 없던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는 방향을 발명한다. 나는 그것을 동료를 만나는 일이라 바꿔 말하고 싶다. 왜 쓰는가. 오직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만나기 위해서. 만남은 드문 사건이다. 그런 이유로 마냥 기다린다고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며 운이라는 요행을 바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애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발명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이미 실험이니 ‘실험적인 글쓰기’라는 표현은 불필요한 수사다. 글쓰기는 세상의 숱한 바람들을 정확하게 감지하는 풍향계가 아니다. 없던 바람의 방향을 찾아내고 반응하는 발명이다. 말하자면 방향을 발명하는 일. 발명이란 실패의 짝패이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실패가 발명인 것은 아닐지라도 실패 없는 발명은 없다. 글쓰기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면 이제 이런 문장도 성립 가능하다. ‘글쓰기에 실패한 오늘도 틀림없이 쓴 날이다.’ 



기울어진 균형

글쓰기는 방향을 발명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편에 서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의 모든 첫 문장이 편향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외줄타기 곡예사를 떠올려보자. 균형을 잡고 걸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집중하는 것은 균형이 아니다. 외줄 위에선 작은 바람과 나뭇잎 하나도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바로 그 예측할 수 없는 우연성을 수락할 때라야만 외줄 위에서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균형’은 절대값이 아니라 숱한 변수(우연성)들과의 어울림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유지되며 잠깐 머물 수 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균형은 ‘기울어진 균형’이라 바꿔 써야 한다. 생활 또한 균형을 맞추고 유지하는 게 아니라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일이다. 기울어졌지만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기울어짐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한쪽 편에 서서도 균형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은 보편적이고 신화화된 균형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개별적인 균형, 다른 균형, 우연성의 균형을 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편에 서 있다. 오직 그 편향된 자리에서만 글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무릅쓴 기울기, 도리 없는 물매를 수락해야 하는 것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를 통해서만 없던 방향을, 기울어진 균형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글-쓰기 모임> 4회 여는 글_2015. 8. 4_광복동 <잠> 게스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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