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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2

바스러져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 구조 요청에 응답하는 것 : 대피소의 문학(1) 1. 필사의 글쓰기 이토록 오랫동안 ‘참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시대가 있었던가. 용산 참사 이후 ‘조간朝刊은 부음訃音 같다’(이영광, 「유령 3」)던 한 시인의 말이 몇 년 사이에 ‘조간은 부음이다’라는 절망으로 좌초되어버린 듯하다. 아침에 누군가의 부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부음 없이는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아침은 누군가의 죽음에 빚지고 있는 것이리라. 무력(無力)해지기 싫어서 무력(武力)을 외면하고 무력감(無力感)과 대면하지 않으려 피해다니다보니 겨우 ‘잊지 않겠습니다’정도의 말만을 읊조릴 수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겐 필사적이고 간절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한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잦다. 그건 ‘잊지 않겠다’는 말이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그 말.. 2017. 12. 9.
도움을 구하는 이가 먼저 돕는다 2016. 8. 15 “가끔씩 이야기는 무너지고, 우리가 패배했음을, 끔찍한 상황에 처했거나, 우습게 되어 버렸거나, 길을 잃었음을 인정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또 가끔은 구급차나 하늘에서 떨어진 보급품처럼 변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적지 않은 이야기가 침몰하는 배를 닮았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주위에 온통 구명보트가 떠 있는 상황에서도.”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김현우 옮김, 반비, 2016), 14쪽 쓴다는 것의 희망에 관해 내밀하고도 방대한 사례들을 사려깊은 손놀림으로 정성을 다해 뜨개질한 리베카 솔닛의 역작, 『멀고도 가까운』에서 나를 사로잡은 대목은 이야기의 절망에 관한 것이었다. ‘적지 않은 이야기가 침몰하는 배를 닮았다’는 문장을 옮겨두고.. 2016.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