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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4

매일매일 성실한 기적   2014. 10. 18 *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아니 여름을 넘어갈 때까지 나름대로 애를 써가며, 성실히 살았지만 내 삶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기적은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내게 닥친 참혹하고 참담한 일들로 삶의 뿌리가 뽑혀나갔을 뿐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한 시인의 시집 해설을 쓰느라 보름 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여러모로 많은 이들에게 폐를 끼쳤다. 잠은 부족했지만 성실한 기적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어리석은 시간이었다. 글로써, 관계 맻음의 노동으로 무언가를 증명하고 바꾸려는 애씀, 그 안간힘이 어리석은 일인지 몰랐던 여름, 베를린. 매일매일 성실한 시간을 보낸다면 관계도, 세계도 기적을 잉태할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믿음에 기대어 썼던 어리석은 글 한 편. 그 여름,.. 2014. 10. 18.
무한한 하나 : 노동자들의 문서고 1. 용접한다는 것 내 아버지는 용접공이었다. 결혼을 한 이듬해 고향이었던 강원도 삼척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다 어깨 너머로 배운 용접일로 한 시절을 보냈다. 당연히 용접 자격증 따위는 없었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 팀을 꾸려 언제, 어디라도 불러만 주면 달려갔다. 야무지고 기술이 좋다는 입소문 덕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새벽에도, 휴일에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일거리가 생기면 달려 나가 용접을 했다. 식사 시간을 뚝 떼어내고, 잠자리를 뚝 떼어내서 철골들을 이어붙이고 무수한 구멍과 빈틈들을 때웠다. 그렇게 떼어낸 삶을 밑천으로 세간을 꾸렸다. 살림은 밖에서도 훤히 다 보일정도로 말갰고 삶 또한 단 한 번의 우회 없이 직립의 방향으로, 이렇다 할 감춤이 없었다. 다만 점.. 2012. 12. 24.
어두운 시대의 '어휘'들 더 어두워졌다. 한 시대의 어둠을 막아내는 것의 어려움보다 ‘어둠’을 감지하는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있기에, 앞으로 더 어두워질 것이다. ‘어둠’을 감지하는 감각의 퇴화는 우리의 삶이 자본이라는 환등상(Phantasmagoria)이 제시하는 길만을 좇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이전보다 살기 더 편해지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왜 밝은 것들은 보지 않고 어두운 것만 보냐고 힐날할지도 모르겠다. 어둠 쪽으로 몸이 기우는 것,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가는 것은 아마도 ‘문학이라는 병’을 여전히 앓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병이 자꾸만 무언가를 하게 한다. 읽고 쓰고 만나게 한다. 그러나 그 힘이 너무도 미약한 탓에 온통 사라지는 것 투성이다. 문학도, 사랑도, 당신도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 2011. 11. 19.
존재론-비평론-공동체론이라는 보로메오 고리―김영민, <<비평의 숲과 동무공동체>>(한겨레출판사, 2011) 사람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친구[동무]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적들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 ―롤랑 바르트,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41쪽. [ ]는 인용자 삽입) ‘안다는 것’은 필시 ‘비용’을 요구한다. 그 비용이란 앎에 다가서기 위해 행한 ‘나의 노력’ 따위들만으로는 치를 수 없는 성질의 것인데, 그것의 요체는 바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좋든 나쁘든, 안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짓이다.”*). 이 돌이킬 수 없음은 비단 ‘앎’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휘의 문제와도, 생활양식의 문제와도, 공동체의 문제와도, ‘새로운 의욕’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김영민의 글을 ‘읽는다는 것’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것’에 가깝다.. 2011.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