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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의 '어휘'들

by 종업원 2011. 11. 19.

<이번 호를 내며>


 더 어두워졌다. 한 시대의 어둠을 막아내는 것의 어려움보다 ‘어둠’을 감지하는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있기에, 앞으로 더 어두워질 것이다. ‘어둠’을 감지하는 감각의 퇴화는 우리의 삶이 자본이라는 환등상(
Phantasmagoria)이 제시하는 길만을 좇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이전보다 살기 더 편해지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왜 밝은 것들은 보지 않고 어두운 것만 보냐고 힐날할지도 모르겠다. 어둠 쪽으로 몸이 기우는 것,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가는 것은 아마도 ‘문학이라는 병’을 여전히 앓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병이 자꾸만 무언가를 하게 한다. 읽고 쓰고 만나게 한다. 그러나 그 힘이 너무도 미약한 탓에 온통 사라지는 것 투성이다. 문학도, 사랑도, 당신도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그렇게 모두 다 사라질 것이다.

 지난 10월 28일,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던 광안리 길목에 사람들이 모여 이별하는 데 애를 쓰고 있었다. 대안 공간 <반디>가 문을 닫은 것이다. 모두가 슬퍼했지만 그 누구도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반디>가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버텨달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문화의 불모지인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힘겹게 깜빡이고 있던 ‘반딧불’이 꺼지자 사람들은 그동안 그 불빛에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반디>가 비춰주던 ‘길’ 하나가 있었고 그 ‘길’이 사라진 것이다. 그 ‘길’로 걸어간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청년들과 예술가들이 부산을 떠난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도시와 자본이 지워버리는 ‘길’에 대해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반디>를 애도하던 그 골목 아래에서는 불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일주일간 쉬지 않고 광안리 밤하늘을 불꽃으로 채웠다. 도시는 매일 밤 불꽃으로 화려했지만 도시가 이전보다 어두워졌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도시에서는 반딧불이 살 수 없다고 했다. 도시에 반딧불이 사라진지 오래여서 사람들은 미약하게 반짝이는 그 불빛이 의미하는 것을 몰랐다. 아무도,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


 어떤 시인은 조간(朝刊)이 부음(訃音) 같다고 했다(이영광, 「유령 3」). 매일 아침 도시를 밝히고 있던 저마다의 ‘반디’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 미약한 불빛을 찾아 모이던 사람들이, 그들을 모이게 했던 장소가 사라지고 있다. 그것은 정확하게 ‘하나의 어휘’가 사라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동보서적’의 폐업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휘’를 잃었던가. 반딧불과 같은 미약한 ‘어휘’를 통해 우리들은 만나고 이야기 나누며 서로에게 몸을 기울였지만 그 어휘가 사라지자 만남도, 대화도, 연대로 사라졌다. ‘어휘’는 하나의 공공재(公共財)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문학잡지의 운명 또한 ‘어휘라는 공공재’를 가꾸고 발명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좋은 기획을 통해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작가의 반경을 넓히는 것, 그들 하나하나의 활력이 바로 ‘반딧불’들이다. 문학잡지가 작가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에 의해 문학잡지가 산다. <<신생>>의 가장 큰 동력 또한 ‘하나의 어휘’를 돌보는 그들의 애씀에 있다.

 이번 계절 <<신생>>을 통해 반가운 소식을 알릴 수 있어 기쁘다. 이미 예고한 것처럼 <김준오 시학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결정되었다. 오랜 시간 동서양의 이론을 접목시켜 독자적인 시론을 구축하기 위해 애쓴 이승훈 선생에게 그 영광이 돌아갔다. 예심과 본심의 심사평을 통해 <김준오 시학상>이 주목했던 시론서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승훈 선생의 수상 소감과 신작 시론 「선과 시의 만남」 또한 만나볼 수 있다. <김준오 시학상>이 “한국 시 이론 현 단계의 수준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신작시> 코너는 <<신생>>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춥고 어두운 이번 계절을 밝혀줄 따뜻한 불빛을 김명남, 김명옥, 김용택, 박상순, 박완호, 박정대, 손병걸, 이근대, 이진수, 이창수, 장대송, 장석원, 전다형, 정우영, 정이향 시인들께서 마련해주셨다. 폭압적인 근대적 질서 속에서 점점 더 제 덩치를 불려가는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 그 체제와 창의적으로 불화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는 데 애쓰고 있는 <<신생>>이 일구어가는 큰 고랑 하나가 <신생 담론을 찾아서>이다. 이번 계절은 김춘성 선생께서 「동학사상과 실천적 삶」이라는 글을 보내주셨다. 모든 생명체들과 공존·공생하는 ‘생명공동체적인 삶’을 모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동학의 생명사상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그 검질긴 사유의 끈을 통해 대안이 없어보이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미한 길 하나를 가지게 된다.


 이번 계절 특집시는 <<눈물은 푸르다>>에서 <<고양이의 마술>>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고 있는 최종천 시인을 모셨다. 신작시 10편을 통해 최근 시인의 근황과 시적 변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유홍준 시인과의 <e-mail 대담>이 특히 흥미진진하다. 같은 노동계급(출신)이면서 시인인 이 두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각각 ‘인간’과 ‘사람’의 차이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겠는데 그 사이의 긴장감이 두 시인의 대화 속에 결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두 시인의 날이 서 있는 대화를 통해 시의 무능함과 그 무능함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급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박수연 평론가의 최종천론인 「노동과 질문」 또한 일독을 권한다.

 이번 <<신생>>의 특집은 <기와 생태주의>다. 그간 수상한 신비주의나 무협지류의 황당한 과장으로 오인되어 왔던 기(氣)를 과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여러 이론적 문맥을 경유하여 온당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번 특집의 총론격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자이자 시인인 이성희 선생의 「기, 유체적 생명의 그늘」 속에 <<신생>>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성희 선생은 동양학 전체를 관통하는 거의 유일한 개념인 기(氣)가 내적 정합성과 방대한 외적 적용 가능성, 그리고 장구한 시간의 문화사를 가진 거대한 담론일 뿐 아니라 그러한 담론을 가능케 기본적인 상상력임을 논증한다. 손병걸 선생의 「기철학과 생명」, 정천구 선생의 「고전문학과 생태주의―이규보를 중심으로」, 황선열 선생의 「생명시학으로서 기」 글 또한 깊은 공력으로 집필된 글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유와 상상력을 통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숨, 생명의 숨을 불어 넣는 사유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니 일독을 권한다.


 시와 철학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유의 장을 개척한 시인과 철학자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시와 지성>의 이번 계절은 철학자 강신주 선생께서 수고해주셨다. 강신주 선생은 「김수영의 시와 철학―공통된 중심이 부재한 사회를 꿈꾸며」라는 글을 통해 ‘시인’의 존재 미학에서부터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김수영의 시와 산문이 교직하고 있는 인문정신이야말로 새로운 사유의 장을 개척하는 중요한 지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김수영의 민주주의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다는 통찰은 우리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란 늘 새롭게 발명되어야 하는 ‘어휘’와 같은 것임을 깨닫게 한다.

<<신생>>식의 계간평인 <신생 풍경>은 염창근 선생께서 폭력적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오늘날의 적대적 관계에 대해 진중하고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는 글을 보내주셨다. 「신은 칼을 두드리는 대장장이가 아니다」는 2011년의 '평화'와 민주주의'란 어던 것이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진중한 글이니 많은 분들께서 읽어보셨으면 한다. <이 한편의 시>는 김광규 시인께서 「「가을나비」의 추억」이라는 글을 보내주셨다. 얼마 전에 타계한 김규동 시인과의 ‘뒤늦은’ 만남을 시적 체험을 통해 애절하게 기록하고 있다. 「가을나비」는 김규동 시인의 장례식장에서 김광규 시인께서 조사(弔辭)로 읽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 글 또한 그 옛날 문학 청년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던 한 시인을 떠나보내는 후배 시인의 절절한 조사(弔辭)로 읽어도 좋겠다. <신생 서평>은 박훈하 선생께서 정진열· 김형재가 공동으로 집필한 <<이면의 도시>>를, 김영희 선생께서 다카기 진자부로의 <<시민과학자로 살다>>를 짧지만 진중한 글로 풀어주셨다. 짧은 지면에 풍부한 사유를 담기 위해 애쓰신 두 필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신생>>에서 자신 있게 자랑할만 한 코너가 하나 있다. 바로 조용현 선생께서 수고 해주시고 계신 <자연, 생명, 인간>이라는 제목의 연재글이다. 이번 계절 조용현 선생께서 「‘큰 끝’은 ‘끝이 없다’」는 글을 통해 존재의 정위원리로서 주희의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 우주론임을 동서양의 철학적 기반 위에서 규명하고 있다. 한국 지식 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니크한 사유체계를 펼치고 있는 조용현 선생의 연재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온 나라가 한미 FTA 체결로 떠들썩하다.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서울 시장인 박원순을 두고 떠들썩하다. 서울 시장 박원순의 행보는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지평을 열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또한 하나의 ‘어휘’다. 우리는 이제 겨우 어휘 하나를 얻었을 뿐이니 이 작은 어휘가 주는 기쁨에 너무 도취되어서는 안 되겠다. 새롭게 가꾸고 발명해야 하는 어휘가 많다. <<신생>> 또한 그 일을 기꺼이 감당할 것이다. 옆에 있는 존재에 감사하며 ‘어휘’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겠다. 부디 존재라는 어휘를 돌보고 가꾸는 연대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춥고 어두운 이 계절을 이겨나가길 바란다.
 


*<<신생>> 49호, 2011년 겨울호 서문






1. 대안공간 <반디>는 내가 처음으로 가본 전시장이었고, 대안공간이었으며, 미술관이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만난' 한 선배를 따라, 아니 그를 좇아 그곳에 갔던 그날이 아직 기억에 뚜렷하다. <필로아트랩> 대표로 계신 이지훈 선생님이 기획한 '반디 마지막날'의 프로그램에 '반디'를 주제로 한 현대무용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반디의 야외 공간에서부터 1층 전시장을 거쳐, 2층 목욕탕 전시 공간까지 모든 곳을 몸으로 어루만지는 그 몸짓에 울컥 감정이 북받치기도 했다. 그간 <반디>가 걸어온 길을 1시간 정도 설명하시는 김성연 선생님을 보면서 많이 착잡했다. 미술평론가 강선학 선생님의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는 그 말 뜻을 나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가 감당해야할 문제를 오랜 시간동안 한 개인에게, 한 단체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반디>가 문을 닫는 날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던 것은 그 앞에 선 내가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괜한 책임의식이 아닌, <반디>에게 받는 것들이 너무 많고 아직 아무 것도 돌려준 게 없는데, <반디>가 이제 문을 닫기 때문이다. 지역 일간지에 '반디를 애도하는 글'을 기고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여름부터 연기한 원고들의 마감이 눈앞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여서 맘 편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뒤늦었지만 이 별볼일 없는 글에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현하고 싶었다.


2. 군대 복무할 때 처음으로 문예지를 샀었다. 공교롭게도 <문학과사회> 혁신호였는데, 거기에 실린 글을 빼놓지 않고 다 읽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기구독을 신청했고 군복무기간동안 9권의 문예지를 열심히 읽었다. <문학과사회>를 읽으며 획득한 정보로 책을 구매했다. 참으로 무던히도 문지 영업부에 전화를 했더랬다. 상병쯤에는 영업부 직원이 내 목소리를 기억하기도 했었는데, 놀라운 것은 제대한지 6개월쯤이 지난 후에도 내 목소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김현>>전집 구간본 할인 판매 건으로 전화를 걸었던 듯하다). 강원도 철원에서 늘 다급한 어조로 책의 목록을 읊던 그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나보다. 아니면 생소한 경상도 사투리가 기억에 남았거나. 

   매 계절 내무실로 배송되는 <문학과사회>를 보면서 군생활을 견뎌냈다. 시인 진은영의 데뷔시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팬레터를 썼던 기억도 난다. 답장을 바로 받지는 못했지만 훗날 시전문 계간지 편집장이 되어 그에게 청탁 전화를 건 후 한편의 시로 늦은 답장을 받기도 했다(http://transone.tistory.com/35). <문학과사회>에 실려 있는 모든 섹션이 흥미로웠지만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섹션은 <이번호를 엮으며>라는  잡지 <서문>이었다. 기다리던 책이 도착하고 그 계절의 <서문>을 읽을 때의 두근거림을 아직 기억한다. 특히 <문학과 사회>의 서문에는 지난 계절 출간되었던 서적의 목록과 이번 계절 출간을 앞둔 서적의 목록에 대한 소개가 있어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혹여나 잊을까 그 책 목록들을 노트에 옮겨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표지가 너덜너덜 해질정도로 보고 만지작 거렸던 <문학과사회> 혁신호의 이미지. 이때의 특집이 '21세기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였을 것이다. 2011년 2월에 발표된 내 논문의 한 어귀에 1988년 창간한 <문학과사회>의 주인의식을 비판하는 대목을 쓰기도 했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내가 좋아 했던 것을 비판하게 만들고 더 이상 좋아하기만 할 수 없는 책임감을 짐지우기도 한다.  


  
  이 글은 그로부터 10년 후 내가 쓴 첫번째 <서문>이다. 그 누구도 이 글을 읽으며 두근거리지 않겠지만, 나 또한 이제 그런 두근거림은 기억을 통해서나 주억거릴 수 있게 되어버렸지만 계간지<서문>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내내 고민을 했었다. '문학이라는 병' 따위의 낭만적인 어조를 사용한 것 또한 그간의 <서문>에 빚진 것에 대해 나름의 대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두근거림을 내게 선물로 준 것에, 늦었지만 답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문학 작품을 열심히 읽지 않지만 문학에 진 빚만큼은 열심히 갚아나가고 싶다. 그 상환이 또 누군가를 두근거리게 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3. 이 추위를 이겨내는 데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을 시전문 계간지를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것. 과장되어 있고 때로는 과잉되어 있지만 그러나, '과장'과 '과잉'이 없는 삶은 얼마나 밋밋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