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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2

보이지 않는 환대 : 백년의 걸음, 백년의 기억, 백년의 이야기―W. G. 제발트 『현기증. 감정들』(배수아 옮김, 문학동네, 2014) 2015. 3. 21 1 별강문을 쓸 때 작가나 작품 분석에 집중하는 것보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릴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써둔 문장을 읽고, 밑줄을 치면서 나는 동시에 그 누군가를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문장을 읽고 밑줄을 친다는 것이 어쩌면 그 누군가를 떠올리기 위한 예비 행동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그간 썼던 별강문의 어떤 구절과 어떤 문장은 곁에 있는 그 친구가 없었다면 쓸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익명의 그 친구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별강문 한 귀퉁이를 채워가게 되는 것이다. 그 문장이 당사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없었으면 쓰지 못했을 문장은 별강문 한 귀퉁이에 자리 .. 2015. 4. 2.
백년을 걷는 걸음 2015. 3. 16 1. 제발트의 문장이 빽빽한 숲에 들어선 것처럼 걸음을 옮기는 게 쉽지 않다면 그것은 그 숲이 누구가의 기억 속에 들어서는 입구이기 때문이다.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배수아 옮김, 문학동네, 2014)을 읽는다는 것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 시간 속에 들어가 시간의 더께로 뒤덮여 있는 기억의 숲을 천천히 걷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걸음은 잠들어 있는 기억을 깨우는 발자국 소리며, 닫힌 동굴의 문을 여는 주문이다. 2.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K 박사가 베네치아에서 나흘을 머물렀다는 것, 그런 다음 산타루치아 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로나를 향해 떠났다는 사실뿐이다."―142쪽. 은 1913년의 카프카 행적을 뒤쫓고 있는 글이다. 제발트는 카프카가 남긴 기록들을 징검돌.. 2015.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