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복하는 생활

단골 가게(1)-우정의 증인

by 종업원 2013. 12. 15.

 

2013. 12. 1

 


막차 버스에서 동료가 건넨 껌을 야무지게 씹으며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휴지 한장을 조심스레 뜯어 그 껌을 곱게 싸서 버린 후 술 안주로 나왔던 귤 하나를 돌아가는 내게 건넨 또 다른 동료의 선물을 아껴 먹으며 함께 있었던 광복동의 '미뎅'이 우리들의 '단골 가게'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고작 4-5번정도 밖에 가지 않았던 곳을 '단골'이라 하기엔 민망함이 있지만 그곳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지금 우리를 있게 한 중요한 밑절미가 되었기에, 아울러 우리가 오늘 자연스레 그곳을 '다시' 찾았던 이유가 황홀하기까지 한 그곳에서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나는 광복동의 '미뎅'을 우리들의 단골 가게라 부르고 싶은 것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오뎅탕과 골뱅이 무침,... 그리고 무척이나 오래된 미니 오븐에 구운 작은 생선구이 세트를 안주 삼아 나눠 먹으며 조금씩, 천천히 대화를 이어갔다. 미뎅에서 나는 늘 만취했으나 오늘만큼은 취하지 않았다.

가게를 가득 채웠던 손님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자 겨우 자리에 앉아 쉬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는 가끔 우리들의 대화를 들으며 옅은 미소를 짓곤 하셨는데, 아! 저분이 우리의 우정의 목격자였던 것! '미뎅'은 광복동이라는 지리적 좌표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정의 좌표이자 장소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오뎅탕을, 골뱅이 무침을, 구운 꽁치를 우정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귐이 깊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그것은 우정의 목격자들이 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우정의 덕(德;virtue)이 쌓인다. 함께 살아가는 장소의 목록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의 목록을 늘려간다는 것. 나는 그것을 '우정의 덕'이라 부르고 싶다. 이후 다시 찾게 될 단골 가게 '미뎅'에서 우리는 더 좋은 말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우정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폐쇄적 회로에 갖혀 이 세계에서 중뿔나게 언거번거하며 패거리의 기세등등함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정의 목격자들과 함께 살며, 또 서로를 살려내어 우정의 목격자들이 마침내 서로의 우정을 증언해주는 우정의 증인으로 기꺼이 초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회복하는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들(2)  (0) 2014.01.22
편지들(3)  (0) 2014.01.01
우정의 목격자  (0) 2013.12.03
마트라는 세계(1)  (0) 2013.11.30
담포포(1) 전문가의 혀와 연구자의 정좌  (0) 2013.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