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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마트라는 세계(1)

by 종업원 2013. 11. 30.

 

2013. 11. 18

 

 

국제시장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수세미를 발견했었다. 풍성한 거품과 함께 깨끗해지는 그릇들을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에 꼭 들었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가격을 치루고 돌아서는 순간, ‘마트에서 사면 더 싸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건너편 가게에서 본 기가 막히게 예쁜 컵들을 만지지도 못하고 가격만 눈으로 살피기를 반복하며 내가 ‘(대형) 마트의 세계'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트에 잘 가진 않지만 항상 물건의 가격을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더 싼 물건을 사기 위해 기억력과 주의력을 동원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알뜰한’ 습관들이 실은 세상의 사물(대상)들을 온통 가격표가 부착된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 설사 ‘마트’를 거부한다 해도 고작 슈퍼를 ‘선...택’함으로써 합리적 구매라 손쉽게 정당화해버리는 태도는 내가 아무리 애를 쓴다한들 겨우 슈퍼 앞 정도까지만 도착할 수 있음을, 그 이외의 다른 형태의 교환(만남)은 상상(선택)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모든 것을 매매하고 교환의 논리로 바라보게 만드는 이 소비자의 감옥보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마트라는 세계가 개인의 선택과 판단을 스스로 끊임없이 심문하게 한다는 데 있다. ‘마트에서 사면 더 싸지 않을까?’라는 심문의 구조는 단지 물건을 구매할 때만 작동하는 장치가 아니다. 모든 것을 상품 교환의 논리로 환원해버리는 이 거대한 마트라는 세계는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함으로써 항상적으로 ‘내가 오판했을 수도 있다’는 심려로 스스로를 감금시켜버리는 회로와 다르지 않다. ‘마트’는 개별자들을 끊임없이 심문하게 만드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선택과 결정의 자유를 마트라는 시스템에 양도할 때 우리가 상실하는 것은 상상의 능력인지도 모른다.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은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의 박탈과 다르지 않다. 대인·대물 관계가 죄다 상품의 논리로 환원되어 그 어떤 새로운 관계도 상상할 수 없을 때 내 옆에 있는 이에 무심해지거나 지금의 관계를 끊임없이 회의하고 심문하게 된다. 자본제적 체제 아래에 엎드려 자본을 향해 절 하고 있는 우리는 영영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오직 ‘마트라는 세계’의 명령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함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욕망할 수 있는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마치 네비게이션의 일상화로 공간 지각 능력을 상실해버린 것처럼 마트라는 세계에서 우리는 사물·사람과 새로운 관계 양식을 상상하고 또 발명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2013. 6. 16 메모/11월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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