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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우정의 목격자

by 종업원 2013. 12. 3.

2013. 12. 3



박광수의 데뷔작 <칠수와 만수>(1988) 중 가장 흥겨운 시퀀스. 김수철의 베이스 슬래핑이 돋보이는 영화 음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이 영화 음악에서 한국 최초의 랩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칠수'와 '만수'가 2인용 자전거를 함께 타고 일터로 향하는 여정이 주는 감흥 때문일 것이다.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정겨운 모습이나 높은 빌딩을 등지고 자가용들의 질주 사이에도 주눅들지 않고 오르막 아스팔트를 힘차게 오르는 이 둘의 역동적인 호흡보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한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칠수와 만수가 함께 사는 동네의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그 아주머니가 기쁜 마음으로 이 둘이 일터로 나가는 장면을 눈으로 배웅하는 장면 말이다. 나는 그 포장마차 아주머니를 '우정의 목격자'라 부르고 싶다. 이 영화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포장마차 아주머니처럼 80년대 영화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지만 지금은 사라진 어떤 미덕이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반짝이고 있는 장면들이 많다. 사라진 것은 '이웃의 정(情)'이라기보다 별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누군가의 삶과 관계의 목격자가 되어주던 '관계의 덕'인지도 모르겠다.

 

 

 

일터로 나서는 칠수와 만수. 만수가 끌고 칠수가 돕는다.

 

 

동네 포장마차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는 만수. 칠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목례 대신 손인사를 한다. 

 

우정의 목격자. 앉아서 인사를 받아도 되지만 기어이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이들을 배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파트를 등지고 자가용(스텔라) 사이를 질주하는 2인용 자전거. 역시 '칠수'는 페달을 밟지 않고 있다! 

 

배우의 얼굴. 박중훈은 이 영화를 시작으로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 성장률을 보인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한국사회의 어떤 표정을 담지하는 얼굴을 가진 배우로 안착한다. 남성적이지만 언제나 실패하는 청춘의 얼굴. 

 

서로의 호흡과 몸이 맞물려 돌아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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