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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짐작과 절망

by 종업원 2013. 11. 23.

2013. 11. 20



짐작하고 있던 것이 맞아들어갈 때, 선견지명이나 뛰어난 예지능력, 혹은 성공률이 높은 ‘촉’에 대한 만족감보다 참담함을 느낄 때가 많다. 예상이 맞다는 것은 다 알고 있어서라기보다 안다는 것이 고작 '나라는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짐작이란 자아가 번성하는 징후에 불과하다. '그럴 거 같더니 그렇더라'는 기실 자아의 논리화라는 것. 흥미로운 것은 '짐작'이라는 것이 제도적인 체계 아래서 더욱 번성한다는 것이다. 가령 직속 상관을 비롯하여 윗사람의 노여움이나 의중은 짐작을 벗어나지 않는다. '불행의 예감은 틀리지 않더라'는 말은 시스템의 체계 아래에서 더욱 그 확실을 다져간다. 그리고 생활을 함께 하는 사람보다 거리를 두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짐작의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야말로 '짐작한다는 것'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때의 거리란 객관화가 아니라 구경과 소문이 번성하기 쉬운 조건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외려 동료나 친구에 대한 짐작은 여지 없이 빗나간다는 데 있다. 내가 짐작했던 그/녀는 만남의 횟수를 늘려가면 갈수록 빗나감의 궤적은 더욱 커진다. 그들은 제도적 준거틀 위에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러하고 그/녀와 맺고 있는 관계 또한 제도의 위계가 아닌 다른 결속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짐작이 틀리는 순간이 내가 내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며 비로소 그/녀를 만나는 순간이다. 그러니 절망은 짐작이 틀렸을 때가 아니라 짐작이 맞았을 때이다. 나의 세계가 '나'에 갖혀 있음을 알아버리는 순간에 있다. 짐작이 어긋나는 그 순간이 너로 하여금 나의 세계가 부서지는 순간이며 그렇게 내가 나의 세계로부터 덤덤하게 걸어나올 수 있게 된다. 




*몇달 전에 써둔 메모를 산책+대화+독서 중 슬픈 마음으로 나지막하게 낭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