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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평범하게 낡아가는 세계

by 종업원 2015. 7. 2.

2015. 7. 2




여당의 최고위원들의 막말과 쌍욕이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보도되던 날, 도무지 염치라고는 개미 똥구멍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맹렬한 패거리들의 세계 아래에서, 또 다시 파탄난 관계의 참담함과 가난함을 달래기 위해 종일 서성였다. 패거리 집단의 민낯을 대면하는 것이 무섭도록 참담한 것은 내가 피해자의 위치에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런 패거리 집단 속에서 암묵적인 동조와 동의 뒤에 숨어 패거리 구조를 견고히 하는 데 역할을 한 것은 아닌가, 자문하고 또 자책하게 된다. 무력과 분노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울쩍하고 슬퍼진다. 허기까지 감당할 순 없을 듯해 시끌벅적한 속이라도 풀고 달랠 요량으로 민주공원 아랫길에 나부끼던 붉은 깃발을 떠올렸다. 그래, 오늘은 짬뽕이다. "비가 오고 외로운 날"은 아니지만 별 수 없이 짬뽕이어야 한다. 
 
좁고 오래된 동네 중국집이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아니 차라리 중국집’다운' 곳이어서 맘이 놓이기도 한다. 음식점의 첫인상이 '낡았다는 것'은 ‘지저분함’으로 기울어버릴 공산이 큰 터라 결코 이롭다고 할 순 없다. 이곳 ‘동주각’은 확실히 낡았다. 오래된 것인지 지저분한 것인지 금방 파악되지 않을정도로 낡았다. 지극히 평범한 '낡은 지저분함'이다. 주문한 짬뽕을 기다리며 가게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16인치도 안 되보이는 TV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큰 액자에 덕지덕지 끼워져 있는 스냅 사진들이었다. ‘동주각’의 주인장 내외로 보이는 부부의 모습과 아이들의 모습이 빛바랜 채로 어지럽게 꼽혀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지 짐작 하기 힘든 빛바랜 기억들의 기록을 잠자코 들여다보았다. 평범하게 행복한 모습. 그렇고 그런 장소와 그렇고 그런 구도로 찍힌 하나 같이 상투적인 사진들이 이 가게와 참으로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에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짬뽕 국물의 맛. 아니 짬뽕은 지나치게 솔직한 맛이어서 조금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빈껍데기 해물들을 과시적으로 쌓아 올리지도 않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육수 맛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맛, 10년 전 여느 중국집에서 먹던 그 평범한 맛을 정직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이 가게의 거의 모든 것이 일관되게 평범하다. 좁고 낡은 곳에 빼곡히 들어 차 있는 평범의 일관성이 자못 경이롭기까지 하다.
 
주문 독촉 전화에 대고 거의 고함을 지르듯 '방금 출발했어요!’라고 호기 있게 외칠 수 있는 것은 손님들의 대개가 단골이거나 이웃들이기 때문일 터다. 불필요한 친절도, 과잉된 사려깊음도 찾아볼 수 없는 날 것의 목소리가 외려 특이하게 느껴질정도다. 여고생 두 명에게 다짜고짜 반말로 주문을 받는 게 못마땅하지만 요청하지도 않은 작은 그릇과 가위를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가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만히 보니 ‘동주각’엔 주방장이 따로 없다. 홀에서 주문을 받던 분이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하고 빛바랜 사진 속에 콧수염을 정성스레 기른 분이 배달 하고 돌아와 카운터 의자에 걸터 앉는다. 사진의 속의 모습으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오직 이 부부 둘만의 힘으로 이 가게의 거의 모든 것이 평범하게 낡을 때까지 분주하게 매만져왔으리라. 특별함을 찾기 힘들다는 것은 흠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느 산사와 어느 폭포, 어느 재롱 잔치, 어느 불우이웃돕기 자선회의 순간이 고스란히 빛바랜 채로 커다란 표구 액자에 들러붙어 있는 것처럼 이 가게의 평범함 또한 그 정도의 시간과 애씀으로 일군 특별한 순간들을 정성들여 쌓은 정직한 결임을 알게 된다. ‘동주각’에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 평범함은 긴 시간동안 세속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잘 넘겨온 성실한 순응의 시간처럼 보인다. '평범한 낡음'이란 예측할 수 없는 세속과 세월의 파도를 달래가며 유별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이 잘 타고 넘어온 현명함의 이력임을 짐작하게 된다. 그간 ‘평범’이라는 가치를  ‘남들처럼’이라는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을 가리키는 말로만 이해해왔건만 ‘동주각’의 평범한 낡음 앞에서 특별한 것만을 좇아 언거번거했던 숱한 시간들이 다스리지 못한 변덕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선뜻 즉답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세속과 불화하는 일이 풍파에 맞서서 대결하는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잘 타고 넘어가가는 일, 오랫동안 흔들림없이 타고 가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이지 않겠는가. 그제야 ‘동주각’이 세속의 파도를 잘 다스리며 오랫동안 그 흐름 위에 몸을 맞추며 하나 하나 쌓아올린 특별한 세계처럼 보이는 것이다.  
 
세속의 바다 위에서 다른 물결을 만드는 일만큼 파도를 거스르지 않고 잘 올라타는 것 또한 중요한 덕목임을 생각하게 된다. 세속에의 순응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평범함의 세계를 쌓아올리는 일 속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관계의 부침들과 마음의 부침들을 현명하게 다스리는 혜안이 깃들어 있음을 주목하고 싶기 때문이다. 홀로 오르락 내리락(변덕) 하며 특별함의 모래성을 쌓고 허무는 일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함께 오르락 내리락(어울림) 하며 평범함의 장소를 일구는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동주각'이라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가게 이름의 출처를 아이의 이름이나 바깥 양반의 이름에서 딴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가게 뒤에 있는 ‘동주파크'라는 오래된 연립 맨션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어울림과 평범의 일관성이 실로 아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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