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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한번이라는 무상의 은총

by 종업원 2015. 11. 5.

2015. 10. 21



‘한번’은 모두에게 관대하다. 우리 모두는 한번 태어나고(물론 태어났다는 사태와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에 가까운 일이긴 하지만) 한번쯤 꿈을 꾸고, 사랑을 하고, 두 번 다시 없을 경험을 한다. ‘한번’이 주어의 자리에 있을 땐 ‘안다’라는 술어보다 ‘모른다’라는 술어와 더 잘 어울린다.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한번의 목록은 대개가 모르고 한 것이거나 모르면서도 한 것들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번은 하지 두 번은 못한다’는 관용어는 두 번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는 말만은 아니다. 눈길을 끌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듯, 없는 듯 있는 ‘한번’의 자리를 눈여겨 볼필요가 있다. ‘한번’의 경험 없이는 ‘두 번’의 어려움을 말할 수 없다. ‘한번은 하지 두 번은 못한다’라는 문장 속엔 ‘두 번은 못한다’는 불가능의 표지만이 아니라 ‘한번은 했다’는 가능성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무심한 듯 자리하고 있는 ‘한번’은 스스로를 특권화 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저 말 속에선 누구라도 ‘한번’을 쓸 수 있다. 비록 어려움과 불가능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고 있긴 하지만 ‘한번은 하지 두 번은 못한다’는 문장 속엔 모두에게 허락된 가능성과 공평함의 역사가 쟁여져 있다.

 

‘한번은 하지 두 번은 못한다’는 말 속에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이치를 캐낼 수도 있다. 풀어보자. 한번은 했다는 것은 모르고 했다는 것이며 두 번은 못한다는 것은 알기 때문에 다시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번’은 ‘모른다는 것’과 짝을 이루고 ‘두 번’은 ‘안다는 것’과 짝을 이룬다. 어려움과 불가능을 말할 때 우리는 한번의 경험을 쉽게 잊곤 한다. 모두에게 허락된 한번이라는 공평함의 가치를, 수많은 누군가가 말없이 일구어온 평등의 장소를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지속과 반복이 불가능하게 다가오는 순간 우리가 떠올려야 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경험한 한번의 가치다. ‘불가능’은 ‘가능’을 경험한 이들만이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다. 모르고도 얻을 수 있었던 ‘한번의 경험’, 모두에게 공평하게 허락되는 가능성의 조건은 그것이 매번 누군가에게 기대어 도착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두 번은 못한다’고 말할 때의 상황이란 혼자만의 힘으로, 독단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표지라고 해도 좋다. 한번이 ‘안다’라는 술어(태도)와 관계를 맺을 때 두 번은 불가능의 세계로 미끄러진다. 그때 모두에게 공평하게 허락되어온 한번이라는 증여의 역사 또한 척박해진다. 그러니 불가능이라는 표지는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번성하는 ‘자아’를 향해 성찰을 요청하는 가능성의 세계로부터 도착한 메시지인 것이다.


‘한번’이라는 무상의 은총. 우리 모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증여의 보살핌 속에서 한번이라는 가능성의 세계를 경험한다. <생활-글-쓰기 모임>의 2기를 시작했던 첫 만남의 자리에서 나는 우리에게 다시 허락된 일곱 번의 만남이 모르고도 기꺼이 도착했던 한번의 경험으로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게 되는 것이다. 선물처럼 도착한 2기라는 시간이 모두의 증여로 일군 장소임을 되새기면서 ‘일곱 번’을 ‘한번’으로 만나는 일, 일곱 번 속에 쟁여져 있는 한번이라는 무상의 은총을 되새기는 일을 반복하고 싶다는 의욕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한번이라는 축복의 목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허락되는 한번의 가치와 세계를 보살피고 지켜가는 일이기도 하다. ‘생활’이라는 아득한 세계의 밑바닥에 한번이라는 가능성의 축대가 버티어왔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에 기대어 일구어온 생활을 ‘글쓰기’라는 의지적 행위로 다시 표현하는 일은 현실에서 마주하는 숱한 불가능 속에 잠재해 있는 가능성의 경험을 불러내는 일이면서 생활 속에서 경험했던 무상의 은총을 아낌없이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생활-글-쓰기 모임> 2기 1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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