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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꿈-기록(2)_비평의 머무름

by '작은숲' 2016. 1. 15.

2016. 1. 9



허탐정을 만나기로 한 날. 선명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내 것이 아니라 잠깐 내게 머물다가 간 것 같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의식이 자아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억압 받는 나'만이 아니듯 꿈 또한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잠깐동안 '꿈'이 '비평'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강력한 논지로 대상이나 현상을 관통해나가거나 무관해보이는 두 지점을 보이지 않는 논리를 찾아내어 꿰어내는 일이 '비평'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어떤 꿈' 또한 그런 일을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잠이라는 낮은 자리로 흘러들어와 내 것이 아닌 것들과 뒤섞이는 일. 꿈이 욕망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도 그건 꿈을 꾸고 있는 한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품고 있는 욕망의 모습에 더 가깝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꿈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도착하는 (세계의) '비평' 같은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어떤 광장에서 허탐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 손에 연을 들고서. 조카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이모로부터 부탁을 받아 들고 있는 것임을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알았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고 있었고 허탐정은 연을 들고 있던 탓에 연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건물 10층 높이정도까지 날아올랐다가 천천히 착지하기를 여러 번. 그 아찔한 비상이 마치 내가 위험에 빠진 것처럼 가슴이 조마조마 했는데, 허탐정의 표정은 편안해보였다."


  꿈에서 깨어 누군가를 위해 연을 들고 있는 허탐정의 모습이, 들고 있던 연 때문에 위태롭게 하늘로 비상하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편안해보였던 그 모습이 '작업을 하고 있는 허탐정'에 대한 어떤 비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허탐정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잠깐 내게 도착한 작은 메시지이거나 어느 곳에서부터 내게 송신된 비평이 내 잠속에 잠시 머물다가 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간 내가 쓰고 말한 비평이 그렇게 잠시 내게 머물렀다가 간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꼭 꿈만이 아니라 다종한 형태로 나를 거쳐 갔을 것이다. 나조차 모르고 가버린 것들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얼마나 많은 '직무유기'를 해온 것일까. 새삼 염려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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