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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두드러기라는 소식

by 종업원 2015. 12. 16.

2015. 12. 14



비리고 흉물스럽게만 느껴지던 복어의 비늘을 어느 사이에 마다하지 않고 먹게 되었기 때문일까. 나는 몇달만에 먹었던 복지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오른쪽 볼에서부터 왼쪽 입술 아래까지 퍼진 두드러기의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전에 겪어보지 못한 두드러기가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다.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니 병원가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원인을 파악하기 힘든 두드러기를 거울에 비춰볼 때마다 상태가 호전될 거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만이 선명해진다. 10일정도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감기를 앓았고 지금은 거의 떨친 상황인데, 별안간의 두드러기 때문에 또 내 몸 앞에서 주저 앉게 된다. 오돌토돌한 표면을 이래저래 만져보고 거울에 비춰보면서 분명 내 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무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두하고 있는 형국이 굳게 닫힌 성문 앞에 내내 기다리다 감금된 느낌이다. 
 

두드러기는 분명 어떤 증상이고 징후이겠지만 외적인 흉물스러움에 먼저 압도되는 탓에 차분하게 들여다보기 전에 염려라는 정서에 붙들리게 된다. 이 염려는 단순히 몸을 걱정하는 심리상태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닌데, 이어 말하면 두드러기라는 ‘문제’의 원인이 필시 외부적인 이유로부터 발생했으며 그것도 아주 나쁜 것이 몸 안으로 침투했다는 부정적인 규정을 서둘러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염려’가 보살피고 돌보는 일이 아닌 잘못을 찾아내고 나쁨을 알아차리는 부정적인 태도와 이어져 있다는 것. 나조차 모르고 있던 내 염려의 오래된 습벽 속에 가려져온 어떤 모습을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를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된 느낌이다. 나는 얼굴에 퍼져 있는 두드러기를 차분히 들여다본다. 이건 음식 탓이 아니다. 식중독이나 알레르기 같은 게 아니다.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다. 가려움이나 설사를 동반하지 않았고 그간 감기가 호전되었으며 몸도 가볍다. 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서둘러 부정적인 증상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차분히 바라보며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그건 염려 앞에서 ‘내 탓이 아냐’라고 성급하게 외치며 외부에 그 문제를 전가하려는 태도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염려가 과도한 자기방어와 외부를 향한 공격으로 점철되어 왔던 건 아닐까. ‘자아’의 벽을 쌓아두고 바깥을 향해 긴 막대기를 내밀어 곁에 있는 이들을 밀어냈던 것은 아닐까. 나의 ‘염려’라는 게 나 홀로 쌓아올린 자아의 성벽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바깥을 향해 손을 뻗고 또 내밀어 무언가를 건네기 위한 애씀이 염려라는 성벽에 걸쳐 있어서 아무리 배려하고 사려깊음의 태도를 취한다고 해도 ‘공격’으로 전달되었던 것은 아닐까. 거듭되는 질문을 쥐고 두드러기의 표면을 두드려본다. 두드러기가 더 번지는 것 같더니 그 주변에 허연 각질을 일으키고 있다. 육안으로 더욱 분명해진 두드러기에 놀라지 말자. 가려움도 없고 더 번지지도 않았다. 그래, 저 분명한 각질은 소강 상태의 표지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2주간 한잔의 커피도 마시지 않았고 내내 녹차만 마셔왔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명현(瞑眩) 현상이라고 믿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두드러기가 그저 하나의 소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여보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가 오고 있다. 이미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두드러기가 그것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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