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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걸레의 자리

by 종업원 2016. 1. 21.

2016. 1. 16



살림의 정수(精髓)는 걸레에 있다. 휴지가 흔해진 지금이야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오물들을 쉽고 간편하게 훔쳐낼 수 있지만 이전엔 무언가를 흘리면 늘 걸레로 닦아냈다. 걸레질을 한다는 건 오물을 지우거나 없애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걸레가 더럽다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한데, 늘 오물을 옮겨내는 걸레를 계속 사용하려면 그만큼 쉼없이 세척해야 한다. 내 어머니가 하루에도 몇번씩 걸레를 빨았던 것을 기억한다. 대충 짠 거 같은데 아무리 힘주어 비틀어도 한방울의 물도 흘러나오지 않던 옹골진 걸레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건 아귀 힘의 차이가 아니라 살림 근육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엌 입구엔 걸레를 두는 통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엔 늘 방금 넣어둔 듯한 두 개의 걸레가 놓여 있었다. 


내가 사는 집엔 마땅히 걸레라고 부를만 한 게 없다. 흘리고 넘친 것은 죄다 주방용 휴지로 간편하게 훔쳐내면 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수건을 걸레로 써야겠다 마음 먹었던 때도 있었지만 걸레란 그저 더러운 것을 처리할 때 쓰는 낡은 천이 아니라 자주 빨고 야무지게 쥐어짜낸 것에만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몇번 헌 수건을 걸레로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더럽혀진 걸레를 매번 빠는 게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애써 빨았다고 해도 마땅히 둘만한 곳이 없는 것이다. 걸레를 그저 방치해두면 심한 악취가 나거나 바짝 말라버려 흉물스러워진다. 


생활 속에서 걸레를 사용한다는 것은 물기를 머금고 있는 상태를 내내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라도 더럽혀질 수 있는 걸레를 관리하고 또 보살필 수 있을 때, 그렇게 걸레와 가깝게 지낼 수 있을 때 살림도 물기를 머금을 수 있다. 먼지가 쌓이는 수많은 마른 구석들은 걸레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손과 걸레가 하나가 되어 구석의 마른 먼지를 훔쳐내며 수분을 공급하는 일. 식물에 물을 주는 것처럼 살림에도 물을 주어야 한다. 걸레질을 하는 것이 오물을 옮기는 일이면서 동시에 살림에 물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걸레야말로 생활과 살림의 작은 지표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생활과 살림의 목록에 걸레가 있다는 것은 더럽고 하찮은 것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내 생활과 살림에 걸레라고 부를만 한 것이 없으며 걸레의 자리 또한 없음을 알게 된다. 그 부재의 자리가 커다랗게 뚫린 내 삶의 구멍인지도 모른다. 마음에 난 커다란 구멍의 출처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걸레를 손 가까이에 두는 생활, 걸레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태도와 상태를 익힐 수 있을까. 맨손으로 걸레를 쥐고 엎드려 바닥을 미는 일. 걸레질은 몸을 낮춰 살림에 절을 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내 생활과 살림에 걸레라는 목록이 깃들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매일 매일 절하며 살림을 보살피고 걸레(들)을 지켜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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