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휩싸인 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기 전, 전태일은 글을 썼다. 그가 남긴 대학노트 7권엔 일기와 어린 시절을 회상한 수기, 친구들에게 쓴 편지, 미완의 소설, 노동청에 보낼 진정서, 사업 계획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근무 실태 조사를 위한 설문지 등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글로써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없이 그는 다만 썼고, 읽었다. 읽은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썼으며 그렇게 알게 된 것을 평화시장의 동료 노동자들과 동생에게 열띠게 설명하고 가끔은 잠자고 있던 어머니를 깨워 다급하게 알렸다. 전태일의 분신이 한국 노동운동사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허락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노동자라는 사실에 대한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 못하다. 전태일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사회에 알리고 호소하는 데 전력했던 ‘투사’이기 전에 당대의 사회가 은폐하고 있던 구조를 노동 현장에서 예민하게 탐침하며 노동자의 언어로 구체화해갔던 유례없는 ‘독학자’였다.
전태일이 분신했던 1970년 11월 13일은 ‘노동자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는 그을음으로 남은 날이다. 그는 왜 ‘분신’이라는 결단을 내렸던 것일까.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평화시장 업주들과 구청, 노동청에 수차례 했으나 번번이 묵살되는 경험 속에서 노동자의 말이 그 어디에도 가닿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밤을 새워 일을 하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어린 여공들의 참상을 보며 스스로의 힘으로 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어야겠다는 결심도 했을 것이며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국가와 자본이 공모하고 있는 이 썩은 세상에 ‘육탄(肉彈)’으로라도 저항해야겠다는 단단한 결의도 품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아버지로부터 노동자들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근로기준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어머니가 이웃에 빚을 내어 사준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닳도록 읽으며 새로운 희망과 확신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은 이 모든 과정과 계획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행한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이 알아 버렸기 때문’에 수행한 것이라고 해야 옳다.
전태일의 ‘분신’은 ‘돌이킬 수 없는 앎’의 증언이다. 그동안 전태일의 분신을 당대 노동자들의 참상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고발한 사건으로 기억해왔지만 스스로의 능력을 깨닫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자기해방’으로 나아간 한 노동자의 앎의 궤적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는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태일에게 ‘노동운동가’의 자리만이 아니라 읽고 쓰는 행위 속에서 무언가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행위를 멈출 수 없었던 ‘독학자’라는 자리 또한 마련해두어야 한다. 말하자면 전태일의 분신은 자신의 몸을 불태움으로써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에게 그 어떤 자리도 허락하지 않았던 이 세상에 돌이킬 수 없이 새긴 그가 쓴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근로기준법과 함께 불태우면서 그가 썼던 것은 ‘인간 선언’이었다. 전태일의 인간 선언은 노동자들의 참혹한 실태를 고발하는 것에서 멈추었던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다. 그건 기왕의 노동자에게 할애되었던 자리(몫)가 아닌 다른 자리에 대한 요구이면서 동시에 제한된 노동자의 정체성을 벗어나는 욕망을 표출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전태일의 분신이라는 발화점은 ‘평등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전제하고 입증해야 하는 출발점’(자크 랑시에르)임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읽고 쓰는 행위 속에서 알아버렸기에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편재(偏在)해 있던 세계의 질서를 다른 것으로 바꿔 쓰는 행위이기도 했다.
전태일이 7권의 대학노트에 쓴 글에 주목해보자. 그가 남긴 글의 내용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글의 종류가 다종하다는 데 있다. 전태일의 유서로 알려졌던 친구에게 보낸 편지는 1970년 4월 초에 썼던 소설 초안의 일부며 그의 노트엔 대통령과 근로 감독관에게 썼지만 보내지 않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진정서와 1967년부터 기록된 일기와 수기, 일기 속에 옮겨 적은 애송시와 직접 쓴 시, 사업 설립 계획서와 근로조건 실태조사 설문지와 평화시장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의 회칙과 회의록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글의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전태일이 이토록 다양한 형식을 글을 썼던 이유에 대해 먼저 물어야 한다. 일관된 형식을 갖추지 못하고 두서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다종한 글들은 오랫동안 노동자들의 글쓰기를 규정해온 ‘미성숙함’ 때문이 아니라 전태일이 경험한 ‘앎의 지평’이 기존의 것과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에 의하면 전태일은 밤을 새워 근로기준법을 읽으며 현장에서 필요한 사항을 노트했고 그때의 노트가 훗날 진정서와 근로조건에 관한 앙케이트 작업을 할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여공의 각혈로 각인되어 있는 평화시장이라는 ‘노동현장’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명문화한 ‘근로기준법’은 전태일의 앎의 지평 속에서 같은 선상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앎’이란 ‘근로기준법’이라는 공식화된 활자를 이해하는 것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평화시장이라는 ‘삶’의 현장에도 편재(遍在)해 있었다. 바로 그 사실을 알아버렸기에 ‘앎’과 ‘삶’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장벽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부채감을 느끼게 했던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던 전태일의 바람 또한 자신보다 더 많이 배운 이로부터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앎이 위계화 되어 있는 세상에서 그는 앎의 수평적 교류를 욕망했다. 전태일은 그 욕망을 “서로가 다 용해되어 있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덩어리가 없다면 부스러기도 없을 것’이라는 친구 원섭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은 완고하게 구축되어 있는 앎과 무지, 우월한 지능과 열등한 지능,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분할에 대한 ‘부정이자 거부’의 의미를 가진다. 이와 함께 전태일이 스스로를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라고 명명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그가 남긴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나의 전체의 일부인 너’, ‘너는 나의 나다’와 같은 표현은 서로가 서로의 일부로 교차되고 겹쳐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앎의 영역으로 나아갔던 전태일의 지적 행보와 분신에 이르는 실천의 궤적은 ‘완전한 부정과 완전한 거부’(조영래)의 방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그가 당도하고자 했던 곳은 세상과의 대립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연루된 상태로 기대어 있는 ‘함께-있음’의 자리였다.
전태일의 분신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세계를 알아버린 이가 온몸으로 그 세계를 바꿔 쓰는 행위였다. 활자가 아닌 몸으로 쓴 문장은 이내 검게 타버렸지만 분신이라는 발화점에서 우리는 ‘전태일’의 이름만이 아니라 배제된 이들, 몫이 없던 ‘노동자’라는 이름 또한 구제되었음을 알고 있다. 불탄 것은 전태일의 육신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기계로 간주했던 국가와 자본에 독점되어왔던 앎의 구조였다. 전태일에 의해 성립된 문장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독학자는 불타오르는 사람이다.’ 체계적인 기록을 남길 수는 없을지라도 독학자는 ‘불’이 아닌 ‘타오름’이라는 ‘내재된 힘’을 발명하는 이다. 그런 이유로 독학자라는 이름엔 소유권이 없다. 분할된 몫의 자리를 불태우며 ‘서로가 용해되어 있는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이. 독학자는 아무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일 수 있는 익명(匿名)의 자리로 향한다. 전태일의 ‘인간 선언’은 이름이 없는 이들의 이름으로부터 발화한 것이었다. 전태일이 몸을 불사르며 쓴 그을린 문장을 읽어버린 이들은 1970년 11월 13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타오름’이라는 내재된 힘을 발견한 이들에겐 전태일의 그을린 문장이 분신(分身)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독학자 전태일은 아무도 아니면서 모두인 공통의 이름이다.
<한국일보> 진격의 독학자 기획(<10>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에 기고(2016. 3. 14)
http://hankookilbo.com/v/f0a886c04dbf46a19924a4bc07a15073("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온몸으로 불살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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