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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지진과 내진

by 종업원 2016. 9. 13.

2016. 9. 13



2016년 9월 12일 저녁, 갑자기 건물이 흔들렸고 나는 도서관에서 그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진동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앞뒤로 흔들리는 책장이 증명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재빨리 책상 밑으로 숨었지만 나는 숨을 멈추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녁 8시 반, 수업을 하고 있는 강의실에서 다시 한번 건물이 흔들렸다. 수업은 중단되었고 나는 학생들을 향해 불안하신 분들은 강의실에서 나가도 좋다라고 침착하게 말했지만 나야말로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시 후 강의는 이어졌지만 예상하지 못한 위험 앞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내내 고민하며 모든 재난이 우리를 피해갈 것이라는 막연한 습관에 기대어 짐짓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재난의 징조를 모른 척 방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되었다.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속이 메슥거렸다. 잠들 때까지 메슥거림은 지속되었고 나는 이 증상이 결정적인 순간에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내내 우왕좌왕 한 것에 대한 부채감이 몸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진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무지로 인한 무기력은 사후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겠지만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서 우왕좌왕 했다는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란 없다. 


지진이 있던 밤, 나는 몇몇 사람으로부터 안부 연락을 받았고 또 몇몇 사람에게 안부 연락을 했다. 실로 오랫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은 내게 그간 소식을 묻지도 전하지도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데, 나 역시 그런 형편이었기에 조금도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 답했지만 그 응답과 무관한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었기에 그에 관해 나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특별히 내게 미안할 이유가 없는 그 분의 미안함이 고마웠고 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겪은 지진을 누군가가 전한 ‘미안함’이라는 마음으로 덮으려고 했었다. 지진이 내게 멀미 같은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제대로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던 어리석은 시간 또한 그 마음 뒤에 숨어 서둘러 지워버리려 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와 우리가 당면해 있는 사태를 검질기게 직시하거나 오랫동안 고민하질 못하고 작은 기미나 예감에 성급히 기대려는 오래된 습벽, 그 게으르고 가난한 낭만성으로부터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거듭 생각하게 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고약한 알리바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와 접속해 있는 관계와 세계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소해버리거나 그 안으로 가둬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간힘을 쓰는 맨손 운동처럼 스스로를 버텨내는 데만 열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홀로 아무도 오지 않는 트랙을 하염없이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많은 경로들이 강제적인 방식으로 차단되거나 금지되어버린 경험 속에서 나 또한 더 많은 이들과 접속할 수 있는 광장이나 대로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오솔길을 향해 걸어나가야겠다는 내밀한 다짐이 엄밀함을 도외시 하고 방기하는 지적방임의 알리바이인 것은 아닌지도 거듭 묻게 된다. 언젠간 사람들의 뒷모습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속에서 텅 빈 트랙을 달리던 열정과 근기 또한 맥없이 사위어버린듯 하다. 끝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그 애씀들이 결코 자기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완고함으로,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주름으로 둔갑해 얼굴(영혼의 장소)에 새겨진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 나를 무너뜨려야 했지만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그 이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무너질 수 없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위태로운 감각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필사의 의지 불러내지만 그것이 자기애의 교묘한 둔감술이 아니라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꽤 긴 시간 동안 뒤로 물러날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상태로 지낸 듯하다. 무너지진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금이 간 채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시간. 불가항력적인 지진 앞에서 그것을 감내하고 버텨낼 수 있는 내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나는 오늘 불가항력적이 지진의 광폭함이 아닌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고 온전히 견뎌내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엎드려 있는 안쓰러운 모습에 대해, 어쩌면 하찮고 한심하게 보일 그 모습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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