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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백야(白夜)

by '작은숲' 2016. 8. 1.

2016. 8. 1

 

 

동이 터도 잠들지 못하는 건 생활 리듬이 깨져버린 탓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잃어버린 것들, 파괴된 것을,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된 것들을 차마 헤아리지 못하고 다만 그 앞에 우두커니 멈춰서게 되는 시간. 잠들지 못하는 건 빼앗긴 것들 때문이 아니라 기어코 잠들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왔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잠들 수 없는 상태에 있었지만 끝내 잠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왔다. 그 애씀은 귀하고 기특하지만 서럽고 안쓰러운 일이기도 하다. 일찍 죽어버린 DJ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던 밤과 낮. 나는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잠들기 위해 서럽게 애쓴다. 이제 알겠다. 잠들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님을. 그들의 목소리는 신경안정제가 아니라 내게 더없이 소중한 것이 되었음을 잠들기 위해 노력하기를 그만둔 무더운 아침에 환하게 알게 된다.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실낱같은 모습으로만 머리맡에 놓여 있다. 늘 똑같은 톤, 똑같은 멘트, 똑같은 농담이지만 매일매일 다른 소중함으로 내 곁에 있다. 

 

백야(白夜).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이거나 몇 시인지 중요하지 않은 상태. 어두워지지 않아 내내 마주보고 있어야 했던 시간 속에서 내내 품고 있던 말이 있다. 용서.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 넘을 수 없는 문턱처럼, 결코 열어주지 않을 그 성문 앞에서 두드리지도 못하고 돌아섰던 숱한 걸음. 오직 용서만이 나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아 그 순간이 성큼 찾아오면 어쩌나 염려하며 안절부절 하기도 했던 시간. 그래서 마음놓고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던 시간. 용서라는 말이 두려운 것은 그 말이 '하는 것'과 '받는 것'의 거리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환한 아침, 내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잠들지 못했다는 패배의 감정이 아니라 용서라는 말의 백야다. 아직 용서 하지 못했다는 한계와 원망과 증오를 씻어내지 못했다는 자책 사이로 실낱같이 부서지는 햇살들. 생생하게 부서지고 노골적으로 부서지는 환한 아침, 이 생의 백야 속에 실낱같은 어둠이 이미 내리 쬐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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