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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부상을 안고

by 종업원 2017. 4. 28.

2016. 12. 3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급격히 쇠락하는 오후 6시의 햇살 아래에서 심호흡 하듯 새긴 말이 있다 . 오후 내내 갑자기 호흡이 가쁘고 심장이 가파르게 뛰어 몸이 왜 이러나 노심초사 했다. 내 몸을 급히 무너트리는 원인을, 무심한 그 폭력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당장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까지. 노골적이고 추악한 폭력이지만 짐짓 모른 척, 은밀하게, 집단적으로 눙치며 행해지는 것이기에 전면적으로 대응하지 않고는 맞서는 것이 쉽지 않은 난관 앞에서 차마 싸우지 못하고 다만 지나가버릴 때까지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 싸움을 시작할 수는 있다. 이런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단 끝까지 싸울 수 있는가,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기고 싶다는 바람이 이길 수 있다는 의욕을 불어넣지만 싸움의 성패는 끈질김에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끈질김은 압도적으로 이길 순 없지만 물러서지 않은 모든 약한 것들의 맞섬의 역사다. 더 이상 강하지 않음을 인정할 때, 약함 속에서만 ()약하지만은 않을 수 있음 또한 알게 된다.

 

마치 처음 보는 것인 마냥 몸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작은 소리에도 귀기울여보는 일은 내 것에 대한 관심 때문이겠지만 몸과 낯설게 만나보려는 생소한 시도이기도 할 것이다. 아픈 곳이 한두 군데 늘어가는 것이 몸에 대해 무심하고 무지했던 오만한 시간에 대해 뒤늦은 비용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가 몸을 진단하고 들여다봄으로써 나름의 방식으로, 생활양식에 얹어 몸과 함께 운신하는 일. 오르락내리락 하는 몸의 기운과 정서를 거스르지 않고 그 파동에, 그 물결에 맞춰보는 일. 마치 파도를 타는 서핑 선수처럼 어디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밀려올지 모르는 파도를 기다리다 날렵하게 파도에 몸을 실어 한동안 물살과 어울려보는 일.

 

보이지 않는 희미한 물결을 타다보면 몸의 작은 기미도 허투루 여기지 않게 된다. 매순간 신호를 보낸다. 섬세한 센서처럼 쉼 없이 경보를 울려 위험을 알린다. 말하자면 아픈 곳이 많아진다. 매일매일 아프다. 이 아픔의 곁에 한없이 가벼워지는 몸의 산뜻함이 함께 있다. 아프다는 경보를 예민하게 수신하는 몸일 수 있을 때만 가벼워질 수 있다. 이 일상적인 아픔의 감각 속에서 나는 운동선수들을 생각했다. 골병이 들어 있는 운동선수들의 몸말이다. 그들이야말로 의 전문가이겠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몸의 가능성을 최대로 끌어올려야 하는 생활.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게다. 오래된 아픔을 압도할 만큼의 긴장과 간절함이 있기에 시합에 나설 수 있는 것일 터. 모든 운동선수들은 부상을 안고 뛴다. 부상은 운동선수의 오랜 동료다. 좋은 동료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운동선수와 함께 했고 속속들이 아는 도리 없는 동료. 아픔이라는 우정. 부상을 안고 뛴다는 것이 핸디캡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부상을 안고’, ‘품고뛰는 것이다. 그건 몸이라는 취약한 조건을 인정하고 수락하고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학인이 아닌 운동선수로부터 더 많은 영감을 받고 적잖이 배우게 된다. 폐쇄적인 패거리주의말고는 명징한 게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학인과 학계에 대한 환멸 탓도 있겠지만 두루뭉술해서 언제라도 말을 바꾸거나 결정적인 순간 짐짓 모른 척 줄행랑치기 좋은 번드르르한 말보단 말없이 묵묵하게 해왔던 일들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곁에서 생활이라는 무한한 삶의 터전을 발견하고 정성을 다해 경작하는 이름 없는 농부의 태도가 삶을 구원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생활의 농부들 또한 부상을 안고 뛰는 약한 사람들을 닮아 있다. 부상을 안고 뛴다는 말이 비추고 있는 다른 자리를 소중히 하고 싶다. 기꺼이 부상을 안고 생활하고 싶다. 내 하루를 필드에 오르는 것처럼 진지하고 긴장감 넘치는 장으로 대하고 싶다. 부상을 안고 내가 모르는 몸-너와 부대끼며 매일매일을 넘어가고 싶다. 끈질기게 버티며 회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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