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6
가리는 음식은 분명해도 좋아하는 음식은 모호한 탓일까, 그 흔한 맛집 순례 한번 해보지 않은 터라 먹는 것은 '생활의 문제'일뿐 '만족의 문제'는 아니었다. 뭔가가 간절하게 먹고 싶었던 기억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기억해낼 수 없는 것 또한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한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은 대개 정크 푸드이거나 달거나 짠 스낵류인 듯하다. 음식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는 게 조금은 안타깝게 여겨진다. '음식의 맛'이란 대개 함께 나누어 먹었던 사람들과 얽혀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진다. 더군다나 나를 위해서 누군가가 마련한 음식 또한 없지 않았을 텐데, 그 노동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조금 한심한 일이기도 하다.
요 며칠 '과일이 먹고 싶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었는데, 어제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마트에 들러 과일을 샀다. 복숭아가 한창이던 시기가 지나버려 만만하게 사먹곤 했던 천도복숭아 가격이 너무 올라 살 생각을 못하고 있었고 아오리 사과도 흔적을 감춰버렸다. 계절을 타지 않는 열대 과일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방울 토마토만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한켠에 홍로 사과가 나와 있다. 최정화의 소설 <홍로>가 생각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흔한 사과가 아니라 마치 화장을 한 것처럼 빛깔이 곱고 모양이 뭉툭하니 흡사 파프리카를 닮았다. 순전히 최정화 소설 생각에 하나를 집어 들고 배와 포도 한송이를 구매했다.
며칠 동안 끙끙대고 있는 원고를 '또' 쓰질 못해 잠시 선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홍로 생각이 나 반을 쪼개서 먹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먹어버렸다. 오후 나절 끙끙거리던 원고를 싱겁게 마감하고 남은 반쪽을 천천히 베어물고 그 맛과 감촉을 음미하게 된다. 한입 베어물 때 전해지는 놀랍도록 암팡진 식감이 새삼 경이롭다. 나는 오래전부터 모든 과일에 경이로움을 품고 있었는데 반쪽의 홍로를 먹으면서 그 경이로움이 몸에 내려앉아 돌이킬 수 없이 자리한 듯한 느낌에 휩싸이게 된다. 과일만큼은 마음껏 좋아해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레몬 하나를 갈아서 생수에 타 마시니 기분이 조금 상쾌해진다. 여름내내 여러번 갈아 마시다보니 이젠 별로 시다는 느낌도 없다.
빈틈없이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들과 최대한으로 자신의 몸을 다져온듯한 야무진 배 옆에 홍로가 하나 놓여 있(었)다. 뽐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붉게 아름다운 빛깔과 누가 뭐라든 제 갈길을 걸어온 이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암팡지고 단단한 자태를 매만지며 '과일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기왕이면 제철 과일처럼, 생생하고 다부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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