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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오늘은 뭘 안 먹지?

by 종업원 2017. 9. 22.

2017. 9. 21



나 역시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일상적인 고민은 보기와 달리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에 가깝다. 또래 집단이나 무리 속에선 오늘도 '뭐 먹을까'를 지겹게 고민 하고 또 왕성하게 생산해낸다. 지나치게 많이 먹고 닥치는대로 먹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서, 한없이 게으르게, 고민없이 고민한다. 오늘도 '골라' 먹지 않은 이들만 손해다. 손해보지 않기 위해선 맛있는 것들을 닥치는대로 먹어야 한다. 고기라서 맛있고 할인해서 맛있고 런치 세트라 맛있다. 오늘 이 맛있는 것들을 먹지 않으면 나만 손해다! ‘맛’은 통합되고 획일화되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지만 (골라 먹는) ‘맛’에 중독된 ‘뷔페 사회’의 증상! 


마음 먹는다면 어제 내가 먹은 것을 빠짐없이 기억할 수 있고 일주일 전에 먹은 것의 목록까지 대충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많이 먹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단 할 수 있는만큼 가려 먹는 식습관 덕분일 것이다.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는 말은 명백히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두어야 했던 이 땅의 빈곤한 시절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많이 벌어 많이 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천민 자본주의가 비호하고 있는 습성 중 하나에 가까울 것이다. 이 시대의 식문화 강박증은 뭐든 골고루(닥치는대로) 먹어야 한다는 맹목에 있다. 골고루 먹으면 병든다. 조금 덜 먹고 가려 먹어야 잘 살 수 있다. 그래야 함께 살 수 있다. 


‘한입만!’을 외치며 수저의 한계치를 넘어 요괴의 입처럼 커지는 음식 프로들이 미덕으로 소비되는 푸드 포르노 월드에서 ‘오늘 뭐 먹지?’라는 물음은 체계의 강박적인 명령이기도 하다. 누구라도 닥치는대로 먹어야 사회적 비대함을 통해 자본가들이 체계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먹지 않는 게 손해인 '뷔페 사회'에서 인간만 병드는 게 아니다. 동물도, 세상도 함께 병들어 가고 있다. ‘오늘 뭐 먹지?’라는 강박적인 물음의 자리에 ‘오늘은 뭘 안 먹지?’라는 느긋한 물음을 얹어본다. 할 수 있는 만큼 조금 덜 먹고 현명하게 가려먹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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