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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덕담도 기억해야 한다

by 종업원 2017. 8. 20.

2017. 8. 16



가끔씩 만나 밥이라고 먹는 관계는 다섯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하는 형편이니 술자리가 마련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겠다. 몇년만에 한 소설가를 늦은 술자리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급했고 부주의해보였다. 나 같이 일상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의 눈엔 사람을 향한 그의 호의가 유아적인 과잉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가 여전했다기보단 그를 보는 내가 여전했다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만나지 못한 사이 그는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할말도 없었고 하고 싶은 말도 별로 없었기에 나는 자주 술잔을 비웠다. 마치 그러기 위해 술잔을 비우기라도 한 듯 한때 지근거리에서 비슷한 생애사의 경험을 공유했던 이들을 향한 섭섭하고 억울했던 감정들이 증상처럼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때, 전업작가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 소설가가 취직과 결혼을 앞둔 시기 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직장과 직업의 구분에 관한 것이었는데, 상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당신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는 게 요지였다. 대부분의 남성적 관계가 그렇듯 그 또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틈틈이 상대를 하대하거나 호의를 가장해 동생으로 삼고자 하는 노골적인 시도들을 내게도 습관적으로 했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정색을 하며 소설가와 비평가 사이의 긴장 관계의 중요성을 말했던 듯하다. 소설 쓰는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그때의 말이 그의 창작 활동을 응원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상대에게 무례를 범한 것일 수도 있었겠다. 다행히 그 소설가는 비평적 응원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세속적이고 전형적으로 나이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언짢아 지난 날 내가 느낀 당신들의 비겁함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잊고 있던 덕담을 기억해 들려준 덕에 잠자코 술잔만 비웠다. 


세속적이고 전형적인 관계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비켜가려면 내가 했던 실수나 무례했던 행동들, 관계의 과오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덕담과 비평적 응원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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